보통날의 시선 3
가을 안개는 대체로 새벽을 점령해 들어와 따사로운 아침 해를 토해낸다. 안개가 걷히면 들녘의 노란 벼를 배경으로 언덕배기, 논두렁, 마을 어귀와 멀리 산등성이로 하얀 억새가 꽃불을 일으킨다.
가을 억새는 자유를 갈망하는 누군가의 손짓이다. 시름없이 흔들리는 억새가 보기에 좋아 시선은 늘 억새를 찾는다.
꽃과 화려한 단풍의 수런거림 속에서도 정작 나는 가을 억새에 정신을 팔리곤 하는데, 제 몸을 흔들어 눈부시게 나부끼는 억새의 가벼움이 마음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오래전 억새에 대한 뒤척임이 있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던져진 결핍 안에서 조바심이 일던 시절이었다. 억새는 늘 산모퉁이 후미진 곳에서 바람에 한없이 부대끼며 제 몫을 살아냈다. 초가을부터 늦은 겨울까지 사투(死鬪)하듯 흔들리다가 더는 못 견딜 가벼움은 일시에 훨훨 날아 공중으로 흩어졌다. 바라보기에 시린 풍경이었다.
미세한 찬 공기와 창문을 흔드는 바람의 스침, 뒤척이던 불면의 밤 끝, 힘겨운 눈꺼풀 내려앉는 첫새벽에도 억새는 나부꼈다. 나는 억새에 귀 기울였다. 온밤을 지새우며 바람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있는 억새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 저 가벼움의 무게가 타는 듯한 목마름의 시간을 견뎠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부터 내 젊은 날의 우울함은 비로소 견딜만해 졌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난 후에도 끝내 홀로 남아 계절과 시간의 증거가 되는 억새.
자유란 모든 흔들리는 것들의 끝에서 비로소 만나는 뜨거운 해후이다.
억새는 여한 없이 비우고 났을 때라야 오롯이 차오르는 충만함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억새는 오늘도 여전히 하얀 표상(表相)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