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8
그림책 수업 중에 두 아이의 대화를 듣는다.
“넌 첫사랑도 모르냐?
“그게 뭔지 누나는 알아?”
“첫사랑은 마음이 두근두근하는 거야.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의 빨간색이 없어지지 않는 거고.”
“누나는 그럼 남자친구 있어?”
“없으니까,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는 거야. 기다려 보려고.”
초등학교 사 학년인 준이의 관심은 멋 내기다. 손톱이 언제나 빨갛다. 물론 봉숭아 물이다. ‘다ㅇㅇ’에서 구입한 ‘봉숭아빛물들이기’를 구입해 희미해지면 바르고 또 바르며 손톱 관리에 여념이 없다. 30분이면 손톱에 물이 든다며 선생님도 해보세요. 라는 말에 정말 궁금해서 나도 한 봉지 구입했다. 열 손가락에 두어 번 반복해 바를 정도로 양도 넉넉했다.
물을 섞어 약간 되직한 반죽을 손톱에 얹고 30여 분 있으니, 반죽이 굳었다. 살살 긁어내니 어머나! 영락없는 봉숭아 물이다. 밤을 새우며 봉숭아 물든 손톱을 기다리는 재미와 설렘으로 뒤치락거리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 많은 봉숭아꽃은 어쩌고 쉽게, 싼값에 사서 물을 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신혼 때 시골집에서 잠깐 살았다. 마당 귀퉁이에 여름꽃이 만발했다. 채송화며 봉숭아도 그 틈에서 자랐다.
어느 날 남편이 대뜸 “봉숭아 물들여 줄까?” 하면서 밖으로 나가 봉숭아 꽃잎과 이파리를 한 움큼 따왔다.
막내로 자란 남편은 누님이 두 분, 형수가 두 분인데 늦여름이면 어김없이 봉숭아 물들였다 한다. 또한 자기가 직접 그녀들의 손톱을 무명실로 묶어주는 일을 도맡아 했고.
바쁜 엄마를 졸라 봉숭아 물들여 달라고 하기엔 나는 일찍 철이 들었던가. 간혹 동생들과 봉숭아꽃물을 들여 보았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 손톱은 남편의 손에 맡겨졌다. 백반(白礬)이 있어야 한다, 무명실을 준비해라, 봉숭아 꽃잎 짓찧을 그릇과 방망이가 필요하다, 비닐 랩을 열 장 정도 잘라 놓아라, 밀가루 반죽을 해야 한다, 주문이 많았다. 밀가루 반죽은 왜 필요한지 물으니 손톱 주변으로 봉숭아 물이 번지지 않도록 붙이는 거란다. 떡 찔 때 시루번 붙이듯이 보호막을 쳐두는 것이다.
열 손가락을 죄다 두툼하게 랩으로 감고 누웠다. 마당으로 여름날의 오후가 느긋하게 저물고 있었다. 새삼 느린 것의 여유란 이렇구나 싶었다. 시원하면서도 뭉툭한 느낌의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있자니 서서히 손끝이 시리고 쥐가 났다. 이젠 물이 들었을까 싶어 풀려고 하니 무슨 소리냐며 한밤을 족히 지나야 제대로 물이 든다고 했다. 으악, 이런 손을 하고 밤을 보내라고? 쭉 잡아 빼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남편과 나는 모처럼 음악 감상도 하고 저물어 가는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침이면 손톱에 내려앉은 봉숭아 꽃잎을 보게 되리란 기대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에 꽃물이 드는 것 같다.
30여 분 만에 꽃물이 든 손톱을 보니 예쁘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제법 봉숭아 물답다. 여기에 투명 매니큐어를 발라주면 더 반짝거리고 예쁘단다. 한참을 신기해하며 바라보다가 깨닫게 되었다. 과정이 생략된 봉숭아꽃 물들이기는 재미의 과정도 기대감도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불편함과 뜯어내고 싶었던 조급함을 다독이며 만날 수 있었던 기쁨의 순간, 그리고 봉숭아꽃 냄새 풀풀 나는 공간 또한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참고 기다리면서 만나는 꽃물 든 손톱에 대한 기대감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다. 또한 하루아침에 옛것의 자리를 차지하기엔 그 정성과 향수에도 자리를 내주지 못했다.
단풍이 찬란한 이 계절에 뜬금없다 싶은 봉숭아 물이 든 손톱을 바라보며 준이의 손톱이 끝까지 남아 첫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이 두근두근 첫눈처럼 아로새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