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무늬 - 나무에 깃들다 -

보통날의 시선 61

by 호랑
보통날의 시선 61 겨울나무 그림.jpg

독일의 시인, 소설가이며 화가인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슬픔 속에 삶을 더는 잘 견딜 수 없을 때 한그루 나무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조용히 해봐! 조용히 하렴! 나를 봐봐! 삶은 쉽지 않단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아. 그런 건 다 애들 생각이야. 네 안에 깃든 신神이 말하게 해봐. 그럼 그런 애들 같은 생각은 침묵할 거야. 넌 너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에서 너를 멀리 데려간다고 두려워하지. 하지만 모든 발걸음 모든 하루가 너를 어머니에게 도로 데려간단다. 고향은 이곳이나 저곳이 아니야. 고향은 어떤 곳도 아닌 네 안에 깃들어 있어.’


아빠를 잃고 엄마까지 잃었을 때, “이제 나는 영락없이 부모 없는 고아가 되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허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세상은 넓고 하늘은 드높았으나, 어디에서도 나를 다정하게 불러줄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은 생각보다 컸다. 동생들과 같이 밥을 나눠 먹기도 하고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지인과 친구들을 떠올려 보아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슬픔과 허망함은 나를 통과하면서야 비로소 치유될 수 있음을 알게 되기까지 긴 시간의 흐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그루 나무가 아침처럼 오롯이 떠올랐는데, 바로 내가 태어났던 할머니 댁 앞에 서 있는 팽나무였다.


팽나무는 할머니를 거슬러 증조, 고조할아버지 적부터 서 있었다고 했으니, 당연히 아빠 엄마가 나를 낳고 키웠을 때도 그곳에 있었던, 집안의 가장 큰어른이 바로 팽나무였고, 나무를 떠올리는 순간, 그렇게 큰 위안이 될 줄 몰랐다.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 일 년에 두어 번 사촌이 드나들고 있는 집이지만, 팽나무가 있어 누가 언제 들러도 말없이 굽어보며, 다정하고 따뜻했던 부모처럼 잔가지 흔들어 기척을 보내고 있다.


어린아이였을 적, 마당에 노닐던 암탉과 강아지를 쫓아 뒤뚱뒤뚱, 아장아장 걸어 문밖으로 나왔을 때도, 새해 소망과 풍년,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어른들의 풍물굿을 따라다니며 아빠의 장구 치는 모습이 좋아 천방지축 너울너울 춤을 추며 부모의 품에서 뛰어놀 때도 팽나무는 나와 함께 했고, 사춘기를 넘나들 때도, 결혼을 머뭇거릴 때도, 오래 떠났던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도 팽나무는 거기 그렇게 아량을 베풀고 바람을 달래며 직수굿이 서 있었다.


사람이 아닌 사물에의 위로가 주는 첫 번째에 나무가 존재한다. ‘씨앗의 비밀을 끝까지 살아낼 뿐’이라고 말하는 나무, 나는 그런 나무들에 대하여 늘 말을 잃는다. 그저 바라보고 우러러볼 뿐이다. 우듬지 끝에서 나부끼는 나무의 공중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가없음이 주는 해방감에 전율하곤 한다. 깊고 넓은 그늘을 거느린 나무의 시간이 펼치는 성찰의 특혜를 양분처럼 흡입한다.


오가며 습관처럼 나무를 본다. 특히나 가지런하게 벗은 몸으로 겨울을 사는 나무들의 경건한 생존을 보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헤세의 말처럼 나무는 그저 ‘씨앗의 비밀을 끝까지’ 사는 것일까. 나무가 간직한 씨앗의 비밀이란 무엇일까. 생명을 품은 것들의 숭엄함을 비밀처럼 간직하고 있는 것이 씨앗이 아닌가. 씨앗의 비밀은 어디까지, 언제까지, 얼마나 살아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무의 확장은 씨앗의 비밀이 풀어지는 만큼인 것일까. 기도로 서 있는 것만 같은 겨울나무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유다.


문득 ‘선 채로 껍질이 벗겨져 말라 죽은 나무’를 일컫는 ‘강대나무’가 떠오른다. 나는 이 강대나무를 문태준 시인의 ‘강대나무를 노래함’이라는 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시를 접하고 난 후 곁에 두고 읽는 시가 되었다. ‘선 채로 껍질이 벗겨져 말라 죽은 나무’라니! 직접 본 적이 없으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산등성이에 하얗게 선 채로 삭아가고 있는 한 구도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시인은 ‘마음에 벼린 절벽을 세워두듯 강대나무를 생각하면 가난한 생활이 비로소 견디어진다’라고 했고,‘나는 초혼처럼 강대나무를 소리 내어 떠올려 네 누추한 생활의 무릎으로 삼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부르듯 저 깊은 산속 강대나무를 서럽게 불러 내 곁에 세워 두는 것이다.말했다.


나무를 ‘생활의 무릎’으로 삼는다는 시인이 바로 나무이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곧 나무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생명이 주어졌을 순간부터 지금까지 씨앗을 부풀리고 정성을 기울여 가꾸고 가지를 펼치며 그렇게 목숨을 이어오고 있다.


헤르만 헤세처럼 나무에 묻는다. “삶은 쉽지 않단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아. 모든 발걸음 모든 하루가 너를 어머니에게로 도로 데려간단다. 고향은 어떤 곳도 아닌 네 안에 깃들어 있어.”라고.


이제야 비로소 나무를 더 깊이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안에 깃들어 있을 생명이 움트는 소리, 생명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견디고 있을 나무 안의 가느다란 물줄기와 에너지, 그리하여 누리는 값진 한 가닥의 자유와 해방감까지.


“괜찮아! 다 괜찮아!”라며 빈 가지를 잔잔히 흔들고 있을 고향집 팽나무와 맨몸으로 겨울과 맞서고 있는 세상 모든 나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깃들 수 있기 바란다. 내 안에 깃들어 있을 먼 고향과 만날 수 있으니까. 그것은 나와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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