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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Jan 12. 2021

눈사람이 기다린다

 이곳 서해안에 폭설이 내렸다. 연이틀 강추위 속에 내린 눈으로 세상은 하얗게 침묵을 펼쳤고, 움츠러든 몸과 마음은 칩거하듯 눈에 갇혔다.


 눈길에 장사 없다고, 눈에 갇히니 알겠다. 장애물 없이 걷던 평지의 고마움과, 원활하게 가던 길들의 거침없던 자유로움을. 또 알겠다. 불편함을 견디며 살아내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눈이 내린 길과 골목을 더듬더듬, 비척비척, 기우뚱기우뚱, 벌벌 기다시피 하면서도 사람들은 내 집 앞의 눈을 쓸고, 가게 앞을 정돈하며, 다니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누군가 일찌감치 쓸고 간 빗자루의 흔적을 보며 마음이 가지런해진다. 먼저 행한 그 마음에 숙연해진다. 


 내 편리함은 누군가 조금 앞서 실천한 행동에서 비롯한 것이다.


 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

 나뭇가지 팔을 쫙 뻗고, 머리엔 작은 뿔도 가졌다. 눈은 없고 입만 삐죽 내민 모습인데, 보니 즐겁다.


 누굴까?


 아이 솜씨 같기도, 어른이 지나가다 주변 나뭇가지를 주워 동심을 만들어 놓고 간 것 같기도 한 눈사람이, 오가는 마음을 환하게 한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눈사람은 두 팔 벌려 씩씩하다.


 길을 걷다가 오리 눈사람을 보았다. 


 폐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은 건물 창틀과 지붕에 조르르 앉아 있는 오리 눈사람.


 요즘 신박한 아이템이라는 오리 눈 집게로 만든 눈사람이 사람들을 향해 앙증스러운  부리를 내밀고 있다. 

 재밌다 싶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저곳에서는 뜨끈한 된장 시래깃국이 펄펄 끓었는데, 사람의 발길이 끊긴 거리에 더는 솥이 끓지 않는다.


 눈사람을 만드는 마음은 무엇일까?


 카페 앞에 가오나시 눈사람이 서 있다. 

 카페에 앉아 잠깐의 여유를 누리던 때가 언제였나. 

 텅 빈 카페 앞, 가오나시 눈사람이 어둠에 묻히고 있다.


 사람이 오기를, 마음이 오기를, 얼어붙은 거리에 손님처럼 따뜻한 햇볕이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


 나를 잊지 말라고, 나를 봐 달라고, 언제까지나 기다려 줄 거라고, 그러니 꼭 와야만 한다고, 서로의 마음을 내밀고 받아주는 손짓이 눈사람을 만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눈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눈사람이 녹기 전에, 눈사람 만들던 이의 마음을 헤아려볼 일이다. 


 그 환한 마음에 내 마음을 보태, 눈 내리는 거리를 나서, 뜨끈한 시래깃국을 맘 놓고 앉아 나눠 먹을 수 있는 날을 손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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