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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Jan 22. 2021

배추전, 혼자 먹는다

     

 마침 혼자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이때다 싶어 시골 눈밭에서 끊어온 배추 한 포기를 씻었다. 겉잎 몇 장은 된장 풀어 우거짓국을 끓일 작정으로 따로 챙겨 놓았다. 노란 속잎은 나만의 메뉴 ‘배추전’에 쓰일 것이다.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배추전.

 유난히 좋아해서 자주 해 먹고 싶은 나와, 잊을 만할 때 한 번씩 먹는 것으로 족하다는 가족 구성원의 취향이 달라 오늘같이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면, 나를 위한 배추전이 만들어진다. 


 밥은 필요 없다.


 배추전 실컷 먹고 나면 노릇한 포만감을 만끽하기 때문이다. 이 포만감은 그리운 것들에 대한 소소한 보상심리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TV에서 겨울 별미 음식으로 더러 나오지만, 내가 사는 이 지역에서는 배추전을 해 먹지 않았다.


 경상도에서 살았던 한때, 이웃 엄마들은 서로 배추전을 해놓고 불렀다. 참 소박한  상차림이었다. 그 상 위에서 우리는 아이 키우는 얘기, 자신의 얘기를 터놓기도 하고, 시댁 얘기며 친정 얘기가 끝도 없이 딸려 나왔다. 


 그때 처음 먹어본 배추전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밀가루나 부침가루만 묽게 입혀 생배추의 식감만 살짝 죽인, 아삭 이고 고소한 맛이라니. 김장김치하고는 별개로 겨울에 먹어야 맛이 나는 음식이었다.


 어느 해인가. 서울에서 내려온 형님 내외에게 배추전을 해드렸더니 처음에는 “여기서는 이런 것도 부쳐 먹냐!”셨는데, 그 후로 서울에서도 가끔 해 먹는 음식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배추전 하나 놓고도 정을 나누던 이웃이 있었다.


 고향 떠나 배추전 먹을 때는 고향 그립더니, 고향에 돌아와 살며 배추전 먹을 때는 그곳 사람들이 생각난다.


 수수한 색깔로 서정적인 맛을 끌어내는 배추전, 겨울 가기 전에 몇 번 더 해 먹을 기회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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