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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Oct 26. 2021

홍시로 붉은 하늘


 지상의 모든 열매가 다 사라졌을 때 그리하여 더는 바라볼 무엇이 마땅찮다고 여길 때 홍시는 저만큼 시린 듯 나뭇가지 부여잡고 붉은 하늘을 매달고 있다. 죄다 떨어져 몇 개 남지 않은 단풍 든 이파리 거느리고 쌀쌀한 바람 맞으며 이제나저제나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홍시는 기다림의 상징이다. 풋감으로부터 시작해 단단한 주황색을 거느렸던 날들을 지나 주홍색 홍시가 될 때까지의 시간을 살아온 것 말고라도 홍시는 기다림으로 오는 과일이다. 


 세상의 어버이들은 홍시를 곁에 두고 자식을 기다렸다. 다 익어 뭉크러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영영 오지 않는 자식을 생각하며 무슨 곡절이 있을 거라고, 마루 끝에 앉아 닦고 또 닦으며 애지중지 홍시를 어루만지던 시어머님의 홍시가 그랬다.


 거동이 불편해진 엄마를 위해 아버지는 수시로 홍시 몇 개씩을 엄마 앞에 가져다 놓았다. 익어가는 감을 미리 따 놓았다가 홍시가 되면 틈틈이 내놓는 것이다.  


   “엄마가 홍시를 좋아 하잖여. 어찌나 맛있게 먹는 지 원. 안 말리면 하루에 몇 개라도 먹는다니까.”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홍시가 자식을 위한 어버이들의 기다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내 생각을 바꿨다.

 홍시가 없는 늦가을의 하늘은 너무 쓸쓸하다. 그나마 붉은 홍시가 있어 겨울을 맞는 스산함을 더디 느끼게 해주는 것이 홍시이기 때문이다. 


 펄펄 진눈깨비라도 날리는 날 홍시를 앞에 두고 앉아 나는 누구를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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