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어쩌다 뽑지 않았던 대파가 자라 우뚝 솟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쭉정이 같아서 내버려 두었던 파였지 싶은데 이렇게나 의젓한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겨울을 난 것이다. 차라리 다 뽑았어야 했을까. 혼자 외로이 서 있는 파꽃 한 송이를 보니 왠지 짠하다. 아직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은 초겨울의 밭머리에서 꺾이지도 휘지도 않고 꼿꼿하게 서서 씨를 맺고 있는 파꽃을 한참 들여다본다.
파꽃이 이렇게 예뻤나 싶게 깜짝 놀란다. 흐트러짐 하나 없는 연두색의 질서를 차례차례 열며 대지를 향해 숨어 있던 흰 빛깔의 시간을 퍼뜨린다. 제가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을 행하고 있는 파꽃의 모습을 보며 누구나 무엇이든 자신의 몫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생에 주어진 값진 의무는 아닌가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위한 최선이 아니라 주어진 생을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목숨 있는 것들의 운명이다.
파꽃의 씨를 받고 안 받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파꽃은 그저 자신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는 것들에게 서로 따뜻한 눈길 한번 보내주면 그만인 것이다. 잘하고 있다고, 다 괜찮다고, 그러니 너는 너여서 참 아름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