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내면의 소리
나는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는 행위가 좋다. 그건 제일 깔끔하고 순수한 영역인데, 내가 뱉거나 그린 그림들의 영문도 모른 채로 그냥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방식인 셈이다.
순수한 건 정말 좋다. 무언갈 순수하다고 정의내리는 것 조차도 이름표를 부여하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없는 본능적인 것들이 좋고 본능적인 움직임과 본능적인 이미지가 좋다. 그런 건 마음을 개운하게 해 준다.
무언가로 인하여 가슴뛰는 경험도 좋지만, 아무런 말도 할 필요없이 멍 하니 현재, 지금, 이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행위 또한 좋다. 그건 너무 고요해서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생각하지 못할 지경처럼 정말 고요하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내가 벙어리가 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생각보단 답답하지 않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부정적이고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이 문득 나의 머릿 속 위에 둥둥 떠다닐 때에는 다음과 같은 걸 느낀다. 이 생각이 정말로 진실인가?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나인가? 그건 내가 아니다. 그냥 생각일 뿐이다.
그런 대답이 돌아올 때는 항상 가슴이 말을 한다.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지금 이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마음에게 의문을 품고 해결책을 제시해달라고 조를 때에는 마음은 청개구리인 것 마냥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나는 답답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았을 때,
그 순간 자체가 고요하지만은 않더라도 일단 많은 것들의 집착을 놓아버릴 때 모든 상황들은 있어야 할 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다.
모든 것들이 미로찾기를 하다가 자석들이 자동적으로 제 갈길을 움직이는 것 마냥, 모든 행동과 상황들은 내가 어찌해야 할 도리 없이 자기 자리를 찾는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늘 하루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건 다름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뮤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은 그 사람들이 나의 뮤즈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끼리 영감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는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다.
한 색이 있더라도 그런 영감들을 공유하며 서로 받아들이고 같이 작업하다보면, 평상시 혼자 존재할 때 봤던 색보다 더 아름답게 빛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색들을 보며 경의를 금치 못하고, 단순히 ‘우와.’하고 만다. 그럴 때 나라는 (어쩌면) 냉혈인 인간이 제일 말랑해지는 어린아이가 된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 나오는 그 순간은 다름 아니라 정말 찰나의 작업할 떄 기뻐하는 그 순간이다. 그래서 항상 그림을 그리워하고 작업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모든 예민함들은 그 속에 기인하지만 그것들이 그저 있는 그대로 축복인 마냥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들은 그 어린아이에서부터 나온다. 그럼 내가 생각해야 할 것도, 컨트롤 해야 할 것들도, 고민하고 갈등해야 하는 것들도 그냥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는 그냥 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시간도 아닌 그 무형의 것 안에서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행복이라는 이름과도 달리,
그냥 정말로 존재의 축복과 나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잘난 것 없이 그냥 이 우주, 이 지구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잘 하고 있다고, 그냥 그대로 나 자신으로 살라는 인정 말이다. 그럴 때에는 나의 부모, 혹은 가족을 뛰어넘어서 초월적인 존재가 나를 돌봐주는 느낌에 정말 큰 안심을 느끼면서 마음이 충만해진다. 가슴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차크라가 정말 풍부해지고 그것들이 부풀어 올라서 나의 오라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느낌이다.
난 그 느낌을 사랑하지만 항상 지속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유지하려고, 물끄러미 바라보려고 할 수는 있다. 그건 그냥 현재에 충실하면 된다.
모든 것들을 이별할 수 있다고 나 스스로 받아들였을 떄 순간은 소중해지고, 미워지는 건 아무것도 없이,
누군가와 비교할 것 또한 없이 그냥 ‘지금’ 그냥 ‘나 자신’ 그냥 지금 내가 쉬는 숨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되고 가장 단순하고 명확하게 세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