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행성 Nov 16. 2020

계절의 냄새는 온도로 기억된다

겨울이 오는 글


네가 좋아하는 로션을 바르면 내 몸에선 카모마일 향기가 나.


유럽에 오자마자 작은 상점에 들렀어. 낯선 동전을 건네고 익숙한 플라스틱 병을 샀어. 포장을 뜯지 않고 오래도록 선반 위에 두었어. 처음으로 목도리를 두르고 외출한 겨울날, 집에 와 그제야 뚜껑을 열어봤어.


너는 계절의 냄새를 맡는다고 했지. 아마도 온도의 냄새일거야. 그중에서도 겨울 냄새를 제일 좋아하는 너는, 찬바람이 부는 걸 어찌나 잘 아는지 11월의 초입만 되면 코를 킁킁거렸어.


공기에서 작년과 같은 냄새가 난다는 건 조금 이상하잖아. 그래, 냄새보단 온도일거야. 차가운 공기가 가을의 느적지근함에 익숙해져 있던 점막을 살짝 스치면 너는 금세 떠올리곤 해. 지나온 겨울들의 어렴풋함에 묻어있던 매캐한 난로 연기, 고소한 붕어빵 냄새, 막 꺼낸 모직코트의 두툼함, 얼굴을 파묻었던 목도리의 까슬한 온기, 묵직하게 울리는 캐롤 소리, 차창에 가볍게 톡톡 얹어지는 조용한 눈소리, 입입마다 피어오르던 새하얀 소원들.

한 번 숨을 들이켜면 이 모든 장면이 환상처럼 펼쳐진다고 아이같이 좋아하던 너의 모습이 생각이 나.


참 이상하지. 돌아오는 겨울엔 네가 없어도 카모마일 향 로션을 바르고 있어. 은은한 냄새를 들이켜며 나는 겨울 생각을 해. 아, 이제야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맞다, 냄새가 아니라 온도였다고 했지.


카모마일 향이 36.5도의 온도를 타고 이불속에서 새벽 내 바스락거리면 문득 궁금해져. 내가 바르던 로션은 너에게 어떤 체온이었을까? 하고 말이야.

이전 16화 비엔나에서 온 작별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