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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Feb 28. 2023

3. 태권체조 팀의 세 번째 멤버

3. 태권체조 팀의 세 번째 멤버


“앉았다 일어나면서 주먹 지르고, 이단 발차기! 리듬 맞춰서 날아차기! 옆 지르고 빙글 돌면서 얍 얍!”

이나랑 서하가 전신 거울 앞에서 태권체조 동작을 맞춰 봤다. 주말 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른 음악을 핸드폰으로 틀어 놓고 서로의 동작을 살피며 춤을 췄다. 태권도 동작들 사이에 어깨로 리듬을 타거나 발을 까딱거리며 파도를 타는 듯한 웨이브 동작들을 끼워 넣었다.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을 짜 보려고 노력했지만 둘이서 추는 건 역시 한계가 있었다. 여러 명이 해야 꽉 찬 느낌이 들 텐데, 둘이서만 서툴게 음악을 따라가니 좀 헐렁해 보였다. 하지만 이나와 서하는 최대한 집중하며 동작을 크게 크게 했다. 

도장 안에 뜬금없이 최신 가요가 울려 퍼지자 금세 애들이 몰려들었다. 이나가 태권체조 팀을 모으려 한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었지만 음악까지 틀어 놓고 본격적으로 춤을 추자 관심이 확 쏠렸다. 아직 연습하는 단계라 손발도 맞지 않고 엉성하기 그지없었지만 색다른 도전에 모두들 흥이 오른 눈치였다. 딱 한 사람, 세찬이만 빼고 말이다. 

“와 진짜. 무슨 비둘기들도 아니고 푸드덕거리는 거 봐라. 어디 가서 태권도 배운다는 소리 하지도 마라. 급 떨어지니까.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네.”

세찬이는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대놓고 퉁을 줬다. 물론 이나랑 서하는 세찬이의 간섭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장대비 쏟아지듯 시원하게 울리는 드럼 소리에 맞춰 머리를 흔들다 내려찍기를 하고 손날목치기를 한 뒤 후려차기로 동작을 이어 나갔다. 이나와 서하가 뛰어 높이차기를 하고 착지하는 순간 서로 눈을 마주치며 가위막기를 하는 데서는 몇몇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둘은 앞 꼬아서기를 하며 숨을 고르다 그대로 찍어차기와 내려차기를 연달아 보여 주고, 지르기 동작과 등주먹치기로 마무리를 했다. 

음악의 절정과 끝에 딱 맞물려 끝나는 깔끔한 마무리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휘익, 하는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못 볼 걸 본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세찬이를 빼고는 다들 짜릿한 열기에 휩싸인 듯했다. 대부분 태권체조란 걸 처음 눈앞에서 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도시의 태권도장에서는 유아부 때부터 태권도를 율동처럼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좀 더 재미있고 친근하게 태권도를 익힐 수 있도록 일부러 수업에 넣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일등 태권도장의 관장님은 그런 데 일절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아주 경멸하는 쪽에 가까웠다. 태권도 정신을 무시하고 품위를 떨어트린다는 게 그 이유였다. 태권무용이 웰빙 댄스로 주목받고, 태권체조가 하나의 예술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지만 그런 사실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일관된 관장님의 강직된 태도 때문에 도장 아이들은 한 번도 새로운 경험을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의 이 낯선 경험이 자릿자릿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 거기서 뭐 하니? 자, 자, 각자 자리로. 대열 맞추고, 준비 자세로 간다. 실시.”

이나의 고모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애들을 불러 모았다. 이나와 서하의 춤을 구경하던 애들이 빠르게 흩어져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관장님처럼 무턱대고 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말랑말랑하지만도 않은 사범님의 등장에 들썩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이나랑 서하는 흐르는 땀을 훔치며 후딱 제자리로 돌아갔다. 멀찍이 떨어져 이나랑 서하의 춤추는 모습을 그리고 있던 름이도 얼른 수첩을 챙겨 넣고 대열을 맞춰 섰다. 

“준비운동 먼저 하고. 오늘은 지르기 연습 위주로 할 거다. 높은 띠 애들은 낮은 띠 애들 자세 봐주고. 얼굴지르기, 몸통지르기, 아래지르기 순서대로 한다. 알았나?”

“네, 네, 사범님! 알겠습니다!”

사범님의 호령에 아이들은 배운 대로 짧고 굵게 대답했다. 구령에 맞춰 준비운동부터 시작하는데 이나의 자세가 평소와 달리 자꾸 무너졌다. 이나는 혼이 나간 것처럼 스트레칭 동작들을 대충 슬렁슬렁했다. 아까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아 손발이 저리고 심장이 쿵쾅거려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음악과 동작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 느꼈던 쾌감을 다시 한번 느껴 보고 싶었다. 

“강이나! 준비운동은 기본 중의 기본인 거 몰라? 몸 제대로 안 풀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어?”

이나가 딴생각에 빠져들자 사범님의 호된 호통이 날아들었다. 이나를 끔찍이도 아끼는 고모였지만 도장에선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범님이었다. 뜨끔한 이나는 바로 자세를 바르게 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툭하면 몸을 배배 꼬며 가만히 있질 못했다. 막상 시범 연습을 해 보니 더 안달이 났다. 빨리 애들을 모아 대회 연습을 시작하고 싶었다. 여섯 명이 이걸 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그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지르기 연습을 하는 시간에 이나는 동작을 봐주는 척하며 서하에게 다가가 소곤거렸다.

“우리 작전을 좀 짜 보자. 일단 밑밥은 깔았으니까 분명 넘어올 만한 애들이 있을 거야.”

“그런가? 근데 작전을 짠다고 뭐가 될까? 어떤 작전을 짤 건데?”

서하도 덩달아 속닥거리며 되물었다. 이나는 제쳐지르기 자세를 교정해 주며 혼자 곰곰 생각해 봤던 얘길 꺼냈다.

“있지, 내 생각엔 진아 언니를 꾀어 보는 게 어떨까 싶어.”

“유진아 언니?”

이나가 쉿, 표시를 하며 조용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진아는 도장에서 유일한 6학년이었다. 이나가 살고 있는 읍내는 시골이라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전학을 가는 경우가 잦았다. 자연스럽게 태권도장에서도 고학년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이나 또래의 5학년 몇몇 애들을 빼곤 거의 2, 3학년들이었다. 그래서 더 팀을 꾸리기가 힘든 것이기도 했다. 세찬이와 같이 다니는 애들은 자연스럽게 제외되었고 너무 어린 애들은 애초에 합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진아 언니는 대회 경험도 풍부하고, 6학년이니까 우리보다 아는 것도 많을 거 아니야.”

이나가 말을 이었다. 고작 한 살 차이긴 했지만 그래도 6학년은 뭔가 달라도 다를 것 같았다. 어쩌면 마음만 앞선 둘을 잘 이끌어 줄지도 몰랐다. 

“하긴. 진아 언니가 뭐든 귀찮아해서 그렇지 하면 다 잘하더라. 몸도 엄청 유연하고. 다리도 잘 찢고. 나름 받쳐 주는 힘도 있어서 춤추면 잘 출 것 같긴 해.”

서하가 턱을 손으로 괴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무슨 심사위원이라도 된 것처럼 평가를 내렸다. 어른처럼 구는 그 모습에 이나가 픽 웃고 이내 다시 말을 덧붙였다. 

“있지, 진아 언니는 먹을 거에 엄청 약하잖아. 단 걸 좀 먹여 놓고 얘길 꺼내 보면 먹힐지도 몰라.”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는 이나랑 서하를 보며 사범님이 다시 한번 엄엄한 시선을 보냈다. 둘은 멋쩍게 웃으며 지르기 동작을 이어 나갔다.

다음 날, 이나랑 서하는 부리나케 머리를 맞대고 모였다. 둘은 행여 들킬까 봐 둘레둘레 사방을 살폈다. 

“너 꼬불이 젤리 챙겨 왔어?”

“당연하지. 동전 모양 초콜릿도 사 왔어.”

서하가 눈을 찡긋거리곤 뒤에 감춰 온 걸 주섬주섬 꺼냈다. 원래 도장에는 음식물을 못 가져오게 되어 있어서 몰래 숨겨 온 것이었다. 둘은 찰싹 달라붙어 조촘조촘 걸었다. 진아 언니는 전신 거울 앞에서 퉁퉁한 팔다리를 쫙쫙 늘이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툭 건드리면 데굴데굴 굴러갈 것처럼 얼굴이며 몸이며 다 둥글둥글했지만, 팔다리를 쭉쭉 늘이는 품이 익숙하면서도 날렵했다. 

“언니, 이거 먹을래?”

은근슬쩍 옆으로 다가선 이나가 챙겨 온 젤리와 초콜릿을 은밀히 건넸다. 비밀스러운 작업을 하듯 비장한 표정을 한 이나를 힐끗 보던 진아 언니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그것들을 납죽 받아먹었다. 눈 깜짝할 새에 껍질을 까 입 안에 욱여넣고 우물우물 먹기 시작하는 진아 언니를 보며 이나랑 서하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적당한 때를 가늠하던 이나가 슬며시 말을 꺼냈다.

“저기 언니, 혹시 태권체조…….”

“싫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진아 언니는 단칼에 제안을 거절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단호한 대답이었다. 

“왜, 왜? 같이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무척 당황한 이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귀찮잖아.”

짤막한 대꾸에 이나랑 서하는 말을 잃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지 막막했다. 무작정 조른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알았소.” 하고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해 봤잖아, 언니. 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몰라.”

“맞아. 이게 보기만 할 때랑 직접 해 보는 거랑 차원이 다르다니까?”

이나랑 서하는 몸을 들썩거리며 번갈아 말했다. 한 번 거절당하고 나니 몸이 절로 들썩거리며 조바심이 났다. 진아 언니는 “글쎄다.” 하는 얼굴로 어깨만 으쓱했다. 

“딱 세 번만 같이 해 보자, 그럼. 인원수 다 모이면 세 번 연습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빠지면 되잖아. 응?”

이나가 이번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진아 언니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서하가 대뜸 조건 하나를 덧붙였다. 

“세 번 채워서 나오면 내가 은하수 젤리 쿠키 세 개 갖다줄게, 언니.”

순간 진아 언니의 눈빛이 번뜩였다. 은하수 젤리 쿠키는 한정판으로 나온 구움 과자라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색색의 별 젤리들이 우수수 박혀 있는 쿠키였는데,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기가 어렵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편의점에 들어오는데, 다들 얼마나 득달같이 달려드는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우리 삼촌이 편의점 하잖아. 나라면 구해 줄 수 있지. 그 쿠키 저번 주에 먹어 봤는데, 쫀득쫀득 파삭파삭 환상이더라. 아 참, 한정판이라 우주 스티커도 같이 들어 있는 거 알지?”

이거면 넘어오겠다 싶었는지 서하의 말투가 의기양양해졌다. 이나는 당장에 존경한다는 눈빛을 쏴 보냈다. 둘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로 진아 언니를 빤히 바라봤다. 단번에 거절하던 아까랑 달리 한참 뜸을 들이던 진아 언니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지켜라. 딱 세 번이야. 쿠키도 세 개.”

“앗싸!”

간신히 진아 언니의 승낙을 받아 낸 이나와 서하는 기뻐하며 만세를 했다. 태권체조 팀의 세 번째 멤버가 들어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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