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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Jun 21. 2020

 ‘미기’의 추억

물메기를 소환하라

 커다란 덩치에 넓적한 몸뚱이, 물렁거리는 살집에 미끄덩한 피부. ‘이 생선’의 생김새를 말로 설명하려면 쉽지 않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생선의 외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흡사 거대한 올챙이처럼 보인다고 할까. ‘이 생선’의 정체가 뭐냐고? 흔히 ‘물메기’라 불리는 바닷물고기 꼼치다.

 ‘물메기’(꼼치)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너무 못생기다 못해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어딘지 모르게 미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크고 뭉툭한 머리에 붙어있는 작은 눈은 참으로 볼품없이 생겼다. 옛날에는 그물에 잡혀도 바다에 도로 버려졌다고 하니 생선도 외모지상주의를 비껴갈 수 없었나 보다. 용모가 비호감인 탓에 슬픈 과거를 지닌 ‘물메기’.

 하지만 요즘은 애주가들의 해장국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물메기’의 신분은 급상승했다. ‘물메기’를 한번 맛보게 되면 그 맛에 반할 뿐만 아니라 독특한 식감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일찍이 이 못난이 생선의 반전 매력을 알고 있었다.     




 ‘물메기’는 12월부터 2월까지 주로 잡히는 겨울철 대표 생선이다. 외가인 통영과 친가인 거제도에서는 ‘물메기’를 사투리로 ‘미기’라 부른다. 겨울에 엄마 손을 잡고 수산시장에 가면 온통 ‘미기’가 좌판을 점령하고 있었다. 커다랗고 물컹한 몸집을 축 늘어뜨린 채로. 그러나 시장에 있던 수많은 ‘미기’ 중에 엄마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녀석은 따로 있었다. 물이 가득 찬 수조 안에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놈이어야 했다. 엄마는 살아있는 ‘미기’로 국을 끓여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수조 안에서 얌전히 놀고 있던 ‘미기’는 난데없는 부름에 큰 몸집을 펄떡였다. “아! 차가워!” ‘미기’가 큰 몸뚱이를 펄떡이자 수조에 있던 물이 옷에 튀고 말았다. 엄마에게 간택된 이 녀석은 다른 놈들보다 훨씬 힘이 센 것이 틀림없었다.


 큰 냄비에 나박나박 썬 무와 토막으로 자른 ‘미기’가 끓어갔다. 보글보글 끊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다향이 물씬 퍼져 나왔다. 여기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파만 넣으면 끝. 별다른 조리법 없이 맑은 ‘미기국’이 완성됐다.

 ‘미기국’ 국물을 한 숟갈 떠먹어 보았다. 개운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생선에서 우러나오는 육즙과 무의 시원한 맛이 만나 감칠맛이 더해졌다. 이 담백한 맛에 구차한 양념 따위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 ‘미기’의 구수하고 달큰한 맛이 숟가락을 바쁘게 했다. 국물을 연거푸 떠서 먹다 보면 ‘미기’의 연한 살이 입안에 딸려 들어왔다. 부들부들한 속살은 생선 살이 아니라 마치 연두부 같았다. 너무 부드러워서 젓가락으로는 도저히 집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몽실몽실 피어오른 속살을 숟가락으로 한가득 떠서 입안에 넣었다. 씹을 필요도 없이 살살 녹아 퍼졌다. 은은한 단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아주 싱싱한 해산물에서만 배어 나오는 특유의 단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밥상에 둘러 않아 호로로록 소리를 내며 ‘미기국’을 먹었다. “아! 시원~하네. 한 그릇 더 주소.” 아빠는 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미기국’을 남김없이 드셨다. “가시 안 찔리그로 단디 조심해라이.” 엄마는 먹성이 좋은 내가 혹여나 생선 가시에 다칠까, 잔소리를 하셨다. 온기 가득한 ‘미기국’을 먹고 나면 한겨울 얼어있던 몸도 ‘미기’의 속살처럼 사르르 녹았더랬다.     


 ‘미기’는 국을 끓여도 맛있지만 말려서 쪄 먹으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식감과 맛을 내는 음식이 된다. 통영 향토음식인 ‘말린 물메기찜’이 그것이다. 음식이 불러들이는 추억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붉은 양념 옷을 곱게 입은 ‘말린 물메기찜’은 나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 냈다.

 

 설날, 통영 외갓집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제멋대로 구부러진 골목길을 걷는 것도 재미있었고, 숨이 턱 끝까지 찰 정도로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도 힘든 줄 몰랐다.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 도착한 외갓집 앞마당에는 ‘미기’가 빨랫줄에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온몸을 태양빛에 내맡긴 ‘미기’는 바다 짠내를 뚝뚝 떨구어 내며 꾸덕꾸덕하게 말라갔다.


  외할머니는 8남매를 두셨다. 8남매의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윷놀이가 시작됐다. 외삼촌이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들어주신 윷을 멍석 위로 던졌다. 긴장과 흥분이 몇 차례 교차했다. 윷놀이는 가족들의 열띤 응원 속에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그러자 ‘말린 물메기찜’ 냄새가 코 끝을 자극했다.

 ‘말린 물메기찜’은 외할머니께서 설날에 해주시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우리 식구는 이것을 ‘미기찜’이라 불렀다. 외할머니의 비법 양념장으로 만든 ‘미기’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냈다. 나는 내 손바닥만 한 ‘미기찜’ 한 덩이를 양손으로 쥐고서 힘차게 뜯어먹었다. 꾸덕꾸덕하게 말랐던 ‘미기’는 찜기에 들어갔다 나오자 쫄깃한 식감으로 둔갑했다.  어찌나 쫄깃한지, 씹으면 이빨에 쩍쩍 달라붙는 소리가 났다.  반전 식감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단지 햇볕과 겨울 찬바람에 말려서 찜기에 쪄냈을 뿐인데, 도저히 같은 생선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미기’의 끈적해진 껍질을 씹으면 매콤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양념 맛이 났다. 이윽고 고소함이 코로 용솟음쳤다.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을 당기는 그런 맛이었다. 나는 살점 하나도 놓칠세라 야무지게 뼈를 발라 먹었다. 외할머니의 손을 거친 ‘미기찜’은 어른들에게는 맛난 술안주가 되었고, 손주들에게는 밥반찬으로 설날에 가장 인기 좋은 음식이었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했던 아빠도 외할머니의 ‘미기찜’ 만큼은 좋아하셨다. 우스갯소리로 ‘미기찜’ 때문에 외갓집에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나. ‘미기찜’을 뜯어먹고 있노라면 소고기 갈빗대가 부럽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사촌들과 경쟁하듯이 먹었다. 한 덩이라도 더 먹겠다는 마음으로.




 그때는 몰랐다. 식구들과 둘러앉아 함께 먹는 밥상이 그리운 맛이 될 줄은. 밥 식(食), 입 구(口). 그렇다. 식구는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 했다.  ‘미기국’을 한 입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미기찜’을 생각할 때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부터 우리 가족은 설날을 보내는 풍경이 달라졌다. 더 이상 외갓집에 가지 않았고 친척들과 윷놀이도 함께하지 못했다. 당연히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미기찜’도 먹을 수 없었다. 2,000년. 새해를 하루 앞두고서, 아빠가 사고를 당하신 그날 이후부터.

 우리 가족은 외갓집에 가는 대신 아빠가 잠들어 계시는 산소를 찾는 것으로 설날을 보냈다. 아프고 힘든 시간은 잊히지 않고, 지나간 것들은 늘 그리운 법이다.


 원래 ‘미기’는 비늘이 없어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생선이라 한다. 그러나 ‘미기찜’은 살아생전 아빠가 좋아하셨던 음식이 아니었던가. 엄마는 ‘미기찜’을 아빠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모들은 외할머니의 ‘미기찜’ 맛을 엄마가 그대로 재현해 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빠 제사상에 올라간 ‘미기찜’을 이전처럼 맛있게 먹지 못했다.

 


 

 나는 아빠의 입맛을 많이 닮았다. 동생들과는 달리, 국물 없이는 한 끼의 밥도 제대로 삼키지 못한다. 고기보다 해산물을 좋아하고, 매운탕보다 맑은 생선탕을 더 좋아하는 것도 아빠 입맛을 그대로 빼닮았다.

 문득 ‘미기국’이 생각나 서울에서 먹어보려 하면 쉽지 않았다. 우선 서울에서는 ‘미기국’을 파는 식당을 찾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미기’는 겨울철에만 맛볼 수 있는 생선이 아닌가. 아쉬운 대로 복어국을 주문했다. 맑은 생선탕 특유의 맛은 있었지만 ‘미기국’만큼 시원한 맛을 내지 못했다. 대구탕을 주문했다. 개운한 맛은 좋았으나 ‘미기국’이 내는 달큰한 맛은 없었다.

 하긴. 내가 서울에서 ‘미기국’ 맛을 기대하다니. 통영과 거제도에서 먹던 '미기국'은 신선한 재료 자체로 완성되는 바다의 맛인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개받은 책에 쓰인 한 구절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맛은 미각이 아닌 생각으로 결정해버리는 공감각적 개념이다.  

- 최낙언 <맛의 원리>-

                                                                                                                              


 내가 정말 그리워하는 맛은, 어쩌면 아빠와 함께 밥술을 뜨던 그 시간이지 않을까. 다신 오지 못할 향수 어린 추억이지 않을까. 아무리 맛집을 찾아다녀도, 유명하다는 셰프의 요리를 맛봐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기에.

 나는 눈을 감고서 즐겁고 행복했던 어린 날을 더듬어 본다. 엄마가 끓여온 ‘미기국’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아빠. 한 접시 ‘미기찜’을 내오시며 가시에 붙은 살을 발라주시던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미기찜'을 나눠먹으며 한 때는 사이가 좋던 외가 식구들.

 그리움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진해지는 법이다.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시간들이 그립다. 다신 볼 수 없는 얼굴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산해진미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어도 '그리운 맛'은 여전히 추억 속에 남겨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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