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고개를 돌려 언니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렇게 아플 때 언니가 곁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수술 후 시작된 통증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고통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출산할 때에도 전혀 문제없었던 무통주사가 그때는 내 몸에 맞지 않고 힘들었다.
수술 통증 보다도 메스꺼움이 힘들어 무통 주사 맞는 것을 포기했다. 먹는 진통제도 몸에 맞지 않아서 여러 번 바뀌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마다 언니는 나의 신호에 반응해 주며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 주었다.
수술 다음날이었을까? 여전히 나는 통증과 메스꺼움으로 힘들었다. 낮인지 저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중환자실에 있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제부~! 컨디션은 어때요? 괜찮아요?
네~ 다행이네요.
00이요? 통증도 있고, 속도 좋지 않다고 하고 아직까지 많이 힘들어하네요!
전화 바꿔달라고요? 잠깐만요!"
나는 입조차도 뗄 수 없는 통증과 메스꺼움에 남편과의 통화를 거부했다. 아니 말조차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언니에게 통화하기 힘들다고 손짓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아이들한테도 전화가 왔지만 나는 아이들 전화도 받을 수 없었다.
오남매가 영상을 찍어서 보냈다. 영상 속엔 아이들이 한 명씩 등장해서 귀여운 몸짓과 동작을 하며 엄마, 아빠 힘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지막은 모두 함께 '사랑해요'라고 이야기하며 끝났다.
이 영상은 엄마만큼 훌쩍 커버린 친구 같은 첫째 딸의 아이디어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영상조차도 기운을 차린 며칠 후에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남편은 수술 후 중환자실에 눈을 뜬 순간부터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컨디션 또한 놀랍게 좋았다고...
언니가 남편과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나는 너무나 힘든 나머지 다시 두 눈을 감았다. 신장을 받는 사람보다 신장을 주는 사람의 통증이 더 심하고 하던데, 내 경우를 비춰보니 그런 것 같다. 남편이 수술한 직후부터 나타난 최상의 컨디션은, 듣는 내내 경이로움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출산과 신장 기증 수술 중 어떤 수술이 더 힘드냐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떤 수술이 더 힘들었지 답을 할 수 없었다. 둘 다 비교할 수 없는 만큼 다른 아픔과 다른 고통이라고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제왕절개 3번, 유방 수술 1번, 신장 기증 수술을 했다. 수술 부위마다 다른 아픔과 고통을 느끼며 회복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수술은 꽤나 힘들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젠 내 인생의 수술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 몸에는 가로줄과 세로줄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세 번의 제왕절개로 배꼽아래쪽에 생긴 기다란가로줄 흉터.
또 기증 수술로 인한 배꼽 위 7cm가량의 세로줄과 왼쪽 3cm 두 곳의 흉터.
나는 이 흔적을 아이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사랑으로 빚어낸 영광스러운 흔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몸에 상처들이 있으면 어떠한가?
잠깐의 고통으로 생명이 탄생했고, 한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을 했음을...
흉측스럽기만 했던 내 상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물어갔고, 그렇게 길었던 통증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