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들은 농촌 유학 광고
나는 다자녀, 다섯 아이의 엄마로 여전히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다. 고등학생부터 중학생 그리고 초등학생 세 명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비로소 나의 일상이 시작된다. 이 시간도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다. 어질러진 집을 정리해야 한다. 가끔 고갈된 체력을 충전하는 시간도 갖긴 했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다섯 아이 엄마의 삶은 늘 바쁘다. 집안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나면 벌써 출근 시간이다. 다행히도 남편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림과 육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엄밀히 말하면 살림꾼이다.
나는 막내 쌍둥이들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아주 길었던 경력 단절을 깨고 그렇게 원했던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그때 그 기쁨과 감격은 잊지 못한다. 다섯 명의 아이들을 출산하고 육아했던 긴 시간들은 인내의 시간들이었다. 올해 직장과 육아를 병행한 지 3년 차...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작년 어느 날, 넷째가 엄마가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가 같은 이야기를 두 번째 이야기했을 때, 그때서야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이직만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말은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지금껏 내 삶의 우선순위는 아이들이었으니까...
"그래, 엄마가 너희들과 함께 시간을 갖을게."
직장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심했던 몇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농촌유학을 찾아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기 편리한 강원도에도 농촌 유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2차 모집이어서인지 우리가 원하는 학교가 없었다. 다음에 가야 하나 포기하고 있을 무렵, 라디오에서 '전남 농촌 유학'광고가 흘러나왔다. 라디오에서 농촌 유학 광고를 하는 것이 참 신기하고도 재미있었다. '그래~! 전남 농촌 유학도 있었는데, 왜 그걸 생각 못했지?'
그날 저녁, 전남 농산어촌 유학 사이트를 들어가서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전남 농산어촌 유학 사이트는 굉장히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학교도 정말 많았다. 또 친정과 시댁이 가까우니 오히려 전남으로 농촌유학을 가는 것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여러 날을 찾아보며 남편과 고민한 끝에 강진에 작은 학교 '팽나무 학교'로 결정하였다. 물론 우리가 원한다고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학교는 고학년 우선, 다자녀 가정을 원했고, 우리 가정과 딱 맞는 조건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집문제, 학교와 통학 거리, 거주 환경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았다. 결국 우리 가정은 이곳을 선택했다.
학교를 소개하는 영상을 아이들과 함께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아이들의 기대감도 날로 커갔다.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남편, 중, 고생도 농촌으로 유학 가는 엄마를 응원해 주었다.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가기로 했다'는 어느 일본 작가의 글처럼, 그렇게 나와 세명의 아이들은 이곳에 오게 되었다.
밤하늘이 예쁜 이곳은...
'강진 팽나무 학교'입니다.
이곳에서의 여정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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