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섯맘 May 16. 2024

따뜻함으로 다가온 시골 인심

검정 비닐봉지 안에는...

3월 초에 강진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 생활이 마무리되지 않아 개학 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거주할 집에는 기본 가전과 살림살이들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 옷과, 기타 필요한 것들만 챙기면 됐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했어도 카니발에 짐이 가득 찼다. 꾸역꾸역 짐을 넣고 광주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피곤해하는 아이들은 시댁에 맡겨 놓고 나와 남편은 강진으로 향했다. 시골길로 들어서니 주변이 칠흑같이 어둡다. 서울에서 보던 그 많던 가로등은 어디로 갔을까? 자동차 라이트에 의존해서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대로 떡 방앗간 집에 도착했다. 가게 문도 시골 감성이 넘쳐난다. 가게 문을 열려면 열쇠 비밀번호를 맞추어야 한다. 집안에 들어서자 냉기가 가득하게 느껴졌다.

사진에서 봤었던 그 집, 사전 방문에 둘러봤던 그 집, 짐이 다 빠지고 난 이 집은 또 느낌이 달랐다.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았던 이 방은 너무 냉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만은 이토록 평온한 이유는 무엇일까?

짐만 내려놓고 다시 시댁으로 향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겼다.

 둘 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한 것 마냥 좋기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다음 날, 어머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떡 방앗간 집으로 왔다. 가게 지붕 옆에  간판이 붙어 있었지만, 이곳은 떡 방앗간을 했던 가게는 아니다. 예전에 운영했던 떡방앗간 집은 골목길에 안에 있었다. 이 간판은 그곳을 안내하는 이정표였던 것이다. 가게 지붕 옆에  간판이 있으니 처음엔 우리 집이 떡 방앗간 집인 줄 알았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가게 집이었지만 근사하게 리모델링을 되어 있는 이 집을  우리는  '떡 방앗간 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줄여서 떡집!

이곳을 검색해 보니 이전 주인분께서 그릇 장사를 하셨나 보다.

요즘도 가게 출입문을 열어 놓으면 할머니들이 한 번씩 고개를 내밀며 물어보신다.

  "여기서 뭐 차리요?" 가게 열려고 준비하고 있냐는 뜻이다.

  "네? 아니요~ 저 농촌 유학 왔어요! 이사 왔습니다. 하하하!" 한바탕 웃고 생각해 본다.

이곳 시골에서는 어떤 장사를 해야 잘되는 걸까?

주변에 있던 이발소, 치킨집, 미용실 모두 영업을 멈춘 상태이다. 옆에 그 옆집도  식당이었는데  공사 중이더니  그 빈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내가 사는 이곳 주변에 하나둘씩 가게 문이 다시 열리기를 소망해 본다.



가게 문을 열어놓으니 누군가 길을 지나갔다. 이곳에 사는 주민을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안녕하세요" "응~이사 왔소?" 이전에도 엄마가 애 셋을 데리고 서울에서 이사 와서 살았다는 얘기도 전해주셨다. 할머니는 나에게도 아이를  몇 명 데리고 왔으며, 어디서 왔냐는 여러 질문을 하셨다. 그리고 뒷 집에 그 뒷 집에 사신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시며 할머니 유모차를 끌고 집에 가셨다.

집 정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들긴다. 좀 전에 만났었던 그 할머니셨다. 교회에서 100주년 기념 떡을 받으셨다며 할머니는 안 드시니 아이들 주라며 떡과 배추를 건네셨다.

'할머니가 드실 떡인데 우리 때문에 못 드시는 건 아닐까? 그래도.. 일부러 우리 주시려고 유모차를 끌고 여기까지 오셨는데...'

"아이고~감사합니다. 일부러 저희 주시려고 다시 나오셨어요? 감사하게 잘 먹겠습니다."

나에게 교회는 다니냐며 교회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시며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향하신다.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느니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나고, 또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검정 비닐봉지 안에 들어 있었던 배추와 떡은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이곳 강진에서 느꼈던 따뜻한 인심과 마주한 첫 순간을 떠올려본다.


이전 01화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가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