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를 사랑한 필리핀 여성
방문객 by 정현종
오늘은 호주 빅토리아주 조용한 농촌 마을 Shepparton의 한적한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데 스시가게에서 일하고 있다는 귀엽게 생긴 필리핀 아가씨가 이 시를 써달라고 해서 못쓰는 한글로 힘겹게 써 본 정현종 시인의 유명한 시 '방문객'입니다.
한류가 놀랍지요. 혼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데 한국 시집을 읽는다고 하네요.
방문객 시를 써서 액자에 넣어주고 나니 남자친구 이름도 써달라면서 이름 아래에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를 적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녀는 이 시구가 얼마나 슬픈 내용인지 알고 있을까요?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대를 만나러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고
그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직 선로가 없어도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된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한 배를 타고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느냐
혹시 배는 고프지 않느냐
엄마는 신발도 버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아빠는 아픈 가슴에서 그리움의 면발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주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긴 먹었느냐
그대는 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인지
왜 아무리 보고 싶어 해도 볼 수 없는 세계인지
그대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잊지 말자 하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을
행여 그대가 잊을까 두렵다
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
팽목항의 등대마저 밤마다 꺼져가도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로 300명이 넘는 고등학생들의 죽음을 기리는 이 시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단장의 팽목항에서 길어 올렸을 것입니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