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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한 Feb 04. 2024

장녀라는 이름의 저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장녀들을 위하여

"이한님은 장녀 같아요."

"네, 맞아요. 밑으로는 동생이 둘 있어요."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처음 사람들을 만나 주고 받곤 하는 스몰 토크에 형제 관계는 빼놓을 수 없다. 첫 인상이나 언행을 보며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겠거니‘하는 추측은 형제 관계를 알게 되며 확실시되곤 한다. ’외동이라면‘ ’둘째라면‘ 으레 이렇다는 캐릭터성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나의 경우,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장녀 같다’는 답이 돌아온다. 단 한 번도 ‘외동일 것 같아요’라든가 ‘언니나 오빠가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누군가 ‘이한님은 장녀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 그 누구도 의심하거나 깜짝 놀라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공감하는 모습을 보며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SNS를 하다 보면 장녀의 성격에 대한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무뚝뚝하며, 요령이 없고, 도움을 청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챙기는. 지나치게 부모의 눈치를 본 결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보다 현실적으로 빨리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직종에 뛰어드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장녀의 삶을 보며 공감하고 위로를 받다가도, 문득 왜 장녀만 이런 수모(?)를 겪는걸까 싶어 서럽다. 모든 장녀가 그런건 아니지만, 일단 나의 경우 이 모든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나의 장녀 일화는 어린이날 선물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당시 8살, 여동생은 5살이었고 사촌 동생은 3살이었다. 아침부터 동물원에 가서 동물도 보고 놀이기구도 타며 열심히 놀다가 선물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삼촌 내외가 인형 세 개를 사 오셨는데, 아쉽게도 같은 디자인의 인형이 두 개밖에 없었다. 결국 연노란색 털을 가진 곰 인형 두 개와 살구색 털을 가진 곰 인형 한 개가 우리 앞에 놓였다. 어른들은 최연장자였던 나에게 인형 우선 선택권을 주었고 나는 연노란색 곰 인형을 선택했다. 어린이란 손위 언니나 오빠를 따라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내가 연노란색 곰 인형을 선택하자 여동생도 연노란색 곰 인형을 선택했고, 살구색 곰 인형을 받게 된 사촌 동생은 자신도 연노란색 곰 인형을 갖고 싶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그 때부터 쩔쩔 매며 여동생에게 사촌 동생과 선물을 바꾸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기 시작했고, 여동생은 자신의 곰 인형을 더 세게 끌어 안았다. 울기 시작한 사촌 동생, 어른들을 째려보며 곰 인형을 안고 있는 여동생, 그리고 난처해하는 어른들.


“그냥 제가 저거 할게요.”


나는 내 인형을 사촌 동생에게 건네고 살구색 곰 인형을 가져 왔다. ‘내가 언니니까 양보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멋지게 인형을 주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사실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는데, 끝까지 아이답게 고집을 부려도 됐을텐데.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느니 나 혼자 슬퍼하고 그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장녀라는 이름의 저주가 시작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 때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성적이 상위권이었기에 주변 어른들이 나를 칭찬하며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을 때마다 ‘교과서 위주로 혼자 공부했어요’라는, 어느 수능 만점자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물론 학원을 다니지 않은 것은 돈이 없어서였다. 한국의 여느 가정처럼 나의 부친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그러나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부친은 사회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주로 모친에게 풀었고, 모친의 하소연 상대는 주로 나였다. 하소연 내용은 부친의 폭력성과 가계의 불안정함이었다. 돈이 없는건 내 탓이 아니었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부모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싶었다. 학원을 다니고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서 공부를 하는 대신, 학교에서 보충 수업을 듣고 인터넷에서 받은 학습지를 프린트하고 문제집처럼 철했다. 교회나 학교에서 받는 성적 장학금은 몽땅 부모에게 갖다 바쳤다. 나라면 이런 딸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을 것 같은데, 우리 부모는 오히려 그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너무 뻔해서 자세히 쓸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성우의 꿈을 이루고 싶었지만 학비가 걱정돼 본가 지역에 있는 교대에 진학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렇게 부모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내 꿈과 감정은 헌신짝처럼 내던졌지만 남는건 없었다. 내가 했던 포기와 희생은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 분노가 되었다. 그래서 이십 대 초반, 내가 처음으로 휴학을 하겠다며 부모에게 맞섰을 때 부모는 내가 ‘이상해졌다’고 했다. 나는 그 흔한, 메이커 옷을 사달라는 말도 한 적이 없는 딸이었는데도. 부모와 내 사이는 더 멀어지고 서먹해졌다. 반면 여동생은 따박따박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고집도 부리고 작은 일에도 화를 냈지만 부모는 매번 여동생에게 져주었다. 왜 그런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부모에게 실망감을 줬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의문은 점점 커져갔다. 나는 어려운 일도 거뜬히 해내고 주변 사람의 부탁도 잘 들어주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은 잘 하지 않았고 힘든 감정도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일에도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며 가끔은 트러블을 일으키는 사람이 더 사랑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의 주변엔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 들어 장난을 치고 농담을 나누었다.



장녀로 산 지 30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장녀로 태어났다는건 저주라는 것을. 나는 살면서 내내 자기 혐오와 자괴감,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수많은 밤을 지샜지만 상담을 받으며 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양보하고, 내 감정보다 주변의 눈치를 살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심리학에서 ‘초기 선택’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사실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다. 장녀들이 무뚝뚝하고, 요령이 없고, 자신의 감정을 미뤄두는 것은 단지 그렇게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장녀라는 이름의 저주에 매여 사는 장녀들이 많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갖고 싶은 곰 인형을 양보하고 방 한 구석에서 울었던 아이가 아니다. 주위를 실망시켜도, 때로는 다툼을 일으키더라도, 갖고 싶은 곰 인형은 가져도 괜찮다. 당신은 누군가의 언니, 누나, 딸이기 이전에 당신 자신이다. 전국의 모든 장녀들이 타인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를, 장녀의 저주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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