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여름과 겨울 중 어떤 계절이 좋냐고 물으면 지체 없이 여름이라고 답한다. 덥고 습하고 벌레 많고 ... 여름이 싫은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그럼에도 여름이 좋은 이유는 딱 하나, 계곡 수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은 젬병에다 겁도 엄청나게 많았던 나지만 이상하게 수영하는 것만은 정말 좋아했다.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계곡으로 바다로 수영을 하러 다녔다. 수영이라기보다 물장구에 가깝겠지만, 아무튼 물 위에서 엎드리는 것마저 질색하는 동생과는 달리 나는 물방개마냥 잠수하고 이리저리 개헤엄을 쳤다. 물 속에 잠기면 일순간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세상에는 나와 물밖에 없다는 착각이 들었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단절이었다.
중, 고등학생이 되며 방학에도 바다나 계곡을 가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수영을 배우고 싶기도 했지만 내가 살고 있던 지방 도시에는 수영장이 몇 군데 없었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2-30분을 가야 했는데, 아무래도 학생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물에 대한 갈망은 남아 있었고, 가끔 답답함을 느꼈다. 다행히 본가 화장실에는 욕조가 있었고 생각이 많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욕조에 들어가 하염 없이 물에 잠겨 있곤 했다.
성인이 되고 남편을 만난 후, 여름 여행에는 꼭 수영 코스를 넣었다. 숙소를 계곡 옆에 잡거나 수영장이 있는 숙소에 가서 2시간씩 물놀이를 했다. 어느 날은 계곡에서 수영을 하던 나를 보며 남편이 "여보는 무슨 사명이 있는 사람처럼 수영을 하는 것 같아."라고 말한 적도 있다.
독립을 하고 수도권에 정착하게 되었다. 집 근처에 문화 센터 프로그램을 살펴보던 도중 수영 프로그램에 눈이 멈췄다. 때는 마침 1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좋은 시기였다. 문화 센터의 구조도, 수영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도 모른 채 덜컥 자유 수영을 등록했다. 첫 날부터 파란만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영을 시작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아직 호흡도 자세도 어색한 초보지만, 물을 먹어가며 헤엄치고 있다.
물 속에서는 어쩐지 물 밖에서보다 솔직해진다. 물은 감정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너무 조급하거나 흥분한 상태로 물에 들어가면 물은 나를 밀어내지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물을 받아들이면 물도 나를 받아들인다. 물과 하나가 되어 헤엄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물 속에서의 행복한 기억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