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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Jul 20. 2022

텃밭 가꾸기

농사는 처음입니다만,



 오늘도 다이소에서 씨앗을 구경하다 집어왔다.

7월 말, 당근과 브로콜리를 파종할 시기라고 한다.

자연은 노력에 배신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몇 달뒤 수확을 맛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전에 반려 식물도 꽤나 많이 키워봤는데 대부분 과습으로 혹은 말라죽었다. '햇빛 잘 드는 공간에서 적당히 물만 잘 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람' 즉, 통풍이 잘 되는 환경에 키워야 한다. 그래서 실내 식물보다는 실외에서 키운 작물들이 더 잘 자란다.


 관리를 못하는 내가 텃밭을 가꿀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마당도 있겠다, 작년에 심은 대파를 올봄에 수확해봤고 바질도 잘 키웠으니 본격적으로 가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당이 있는 집에 묘미는 정원 외에도 텃밭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지.


 잔디마당은 돌멩이와 흙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서 갈색 커다란 고무 대야에 흙을 부어 심기로 했다.

화훼단지에 구경 갈 겸 상토 50L를 다섯 포대를 사 왔다. 산에서 흙을 퍼올 수도 있지만 벌레 유충이 있을 수 있고, 상토에서 키워야 더 잘 자라기 때문이다.


 

 일단 초보니까 모종으로 도전했다. 가장 쉬운 작물은 잎채소, 그중에서도 단연 상추이다. 모종 몇 개만 심어도 끊임없이 자란다. 종류별로 청상추, 적상추, 로메인, 청 로메인을 한 다라에 여섯 개씩 네다라를 심었다.

 아뿔싸! 너무 많이 자라 감당하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상추 지옥이라고 불렀다. 많이 자랄 때는 일주일에 세 번씩은 뜯어줘야 하고, 큰 봉투에 세 봉지가 나온다. 가족들이 올 때마다 나눠주었고 손님들에게 직접 따갈 수 있도록 했다. 어찌 보면 가장 쉬운 작물이, 가장 힘들었던 작물이 되었다.

상추는 자라면서 뿌리기 둥이 올라오며 잎이 점점 작아진다. 두 달가량 먹고 초복인 며칠 전 정리했다.    


 

 달래는 뿌리가 옆으로 자라며 퍼진다. 뿌리까지 수확해서 달래장을 해먹기도 했고, 클 때까지 놔두면 쪽파처럼 사이즈가 커지기도 하며 꽃을 피운다. 달래 향이 좋긴 하다만, 뿌리를 씻어서 손질해서 먹기가 귀찮아 다음에는 패스할 거다.

 부추는 여름 내 먹을 수 있어 듬직한 녀석이다. 부추가 자라면 머리 묶듯 모아서 '뚝' 잘라먹어야 또 자란다. 뽑아서 수확하는 작물과 다르게 잘라서 먹는다는 게 리필이 되는 거 같다. 당귀와 쑥갓도 마찬가지.


 잎채소는 고무 다라에서 키워도 잘 자라 주는 걸 보면 아파트 베란다나 주택 옥상에서도 충분히 키울 수 있다!





 잎채소들을 실컷 먹을 때쯤 본격적으로 모종을 사서 심었다.  

내 기준으로 쉬웠던 작물은 가지와 고추이다. 검지 손가락 만한 모종을 심은 지 한 달 좀 지나자 가지가 뻗어 나오고 보라색의 가지꽃과 하얀색의 고추꽃, 그 밑으로 조금씩 열매가 난다. 그리고 수확의 과정. 가지는 큰 잎사귀들을 정리한 것 빼곤 알아서 컸다. 고추는 가끔 벌레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뿌리에 비오킬을 뿌려줬다.


  다음으로  넝쿨작물인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애호박은 멋모르고 심었다가 생각보다 너무 커져서 깜짝 놀랐다.

장마가 지난 뒤 넝쿨이 자라며 자꾸 쓰러지는 바람에 지지대가 필요했다. 다이소에서 산 노끈을 울타리에 묶어 고정해주고, 중간중간 뻗어나가는 잎사귀를 정리해주었다. 가지가 뻗어나가는 사이 토마토와 호박 등 열매가 나오기 시작했다.


 호박은 넝쿨이 자라며 꽃이 피고 벌이 수정해주는 역할을 해주는데, 벌이 없으면 꽃을 직접 문질러줘야지 열매가 생긴단다. 자연은 정말 신비하다.

 우리 집 마당에는 다행히 벌이 있어서 호박이 자라줬다. 벌아 고맙다.


 넝쿨 작물의 매력을 가장 잘 느끼게 해 준 작물을 꼽으라면 단연 오이다. 손톱만 한 오이 열매가 생기고부터 '이게 큰다고?' 라고 의문이 든지 얼마안되서 주렁 주렁 긴 오이가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넝쿨이 자라면서 오이 열매가 나고 또 자란다. 덕분에 오이지를 몇 번이나 담가 먹었다.



가지꽃과 오이



처음 해보는 농사지만 나름 성공적이다.

예능 <삼시세끼>를 보며 텃밭이 부러웠는데 나도 텃밭 주인이 될 줄이야.  

텃밭 가꾸기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다. '망하면 망하는 대로 어쩔 수 없지'라고 기대를 안 해서 더 그랬나 보다. 이러다가 자급자족 라이프 하는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한다.

 가지 아쉬운 점은 땅에서 키우면 좋으련만, 고무 다라와 화분에 키우다 보니 물을 이틀에 한 번은 줘야 했다. 바람과 햇빛에 물이 잘 마르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땅에 직접 씨앗을 뿌려서 도전해봐야겠다.


"오늘 비 온다는 데 그럼 물 안 줘도 되겠다"

비 오는 날이 좋아진다. 채소를 키우며 점차 농부의 마음을 알아간다. 



 타운하우스에 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채소들을 가꾸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기마다 파종하는 작물이 다르고, 수확하는 재미도 느끼게 되었다.

요즘 채소 키트나 스마트팜이 유행이라지만, 30대 초반인 나로서는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다. 그동안 마트에서 쉽게 보기만 했던 채소들이 막상 어떻게 자라는지도 몰랐었으니까.


 녁에 물을 주고 텃밭을 돌보는 일이 조금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꼭 고물가 시대라서가 아니더라도, 채소들을 직접 키우면서 밥상에 오기까지 과정, 자연이 주는 생경한 경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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