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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에 얽힌 아내의 과거

진시황은 아내의 과거를 알고 있었을까?

by 건전남

관광 목적으로 시안을 찾는 이들 99%가 방문하는(믿거나 말거나) 진시황 병마용을 둘러보는 날이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일어나 대충 조식을 챙겨 먹고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고속도로를 경유해 1시간 정도 달리다 보니, 반가운 표지판이 나타난다. 예상한 병마용(兵馬俑)이라는 한자 그대로는 아니었고, 말마(馬)를 간소화한 글자였지만, 대충 비슷하게 생겨먹다 보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학교 다녀오겄습니다'라고 써도 대부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로 읽는 그런 비슷한 원리 되려나) 아무튼 한자를 읽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진시황이 버티고 선 대형 광장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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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병마용갱은 인기 관광지인 만큼 예약이 필수다. 트립닷컴으로 예약하는데 성인(16세 이상) 입장요금은 120위안이다. 아이들은 좀 복잡한데, 중국 국적 아이들은 무료다. 외국인 아이들은 키가 140cm 미만이면 역시 무료다. 그럼 140cm 넘고 16세 미만인 외국 국적 어린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미리 예약을 하는 경우는 그냥 성인으로 결제를 해야 한다. 당일 현장 구매 시에는 성인 금액의 절반인 60위안만 내면 된다. 하지만 인기 있는 오전 시간대 관람을 원한 우리는 혹시 모를 매진사례를 두려웠고, 결국 그냥 성인 금액으로 예약하고 말았다. 아이 2명이니 120위안 손해라면 손해지만, 혹시 아이들 표를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초조함 속에 현장예매를 시도하지 않은 게 어디냐. 물론 매진은 아니었다다다다.



진시황 사후를 보위하는 병마용갱은 모두 3곳으로 구성됐다. 보병과 차병의 1호갱과 전차 부대쯤 되는 2호갱, 군 지휘본부쯤 되는 3호갱까지,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이다. 일단 1호갱이 가장 유명하다. 나팔 불며 밀려오는 중공군 인해전술처럼, 병마용도 많다. 줄잡아 6천 개 정도 된다는데, 일일이 세어보는 것도 고된 작업이었을 테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병사도 있고, (설명을 듣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궁수도 있다. 병사들의 키와 몸집, 얼굴 표정 등이 제각각이다 보니,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갑자기 소름이 돋기도 한다. 아마 실제 병사 하나하나를 그대로 표현해 낸 것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대단한 작업이다. 진시황 너란 녀석은 정말... 훗.


이어서 2호갱으로 향했다. 1호갱보다 깊은 곳에서 아직도 발굴이 한창이다. 알고 보면 첫째 지환이의 예전 장래희망이 고고학자였다. 무언가 불끈 솟아오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런 감흥은 전혀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하하. 뭐든 좋으니 '맑고 건강하게'만 자라자. 고고학자 꿈은 달나라로 떠나보냈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연신 탄성을 질렀다. 애초 병마용에 채색이 있었다는 이야기에 놀랐고, 병사 신발 바닥이 매끄럽지 않음에 감탄했다. 병마용의 오묘한 자세를 흉내 내보고는, 병마용 합성 사진에도 도전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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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3호갱을 둘러볼 차례인가 하는데, 무슨 일이람. 출구다. 과거 중국에서 생활할 때 병마용을 이미 다녀갔다는 아내의 가이드를 믿고 따라왔는데, 신묘한 노릇이다. 병마용갱이 모두 3개 갱으로 이뤄졌다는 것도 모르고, 당시 찍은 사진도 없다. 이쯤 되면 합리적인 의심이 불가피하지 않나.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았지만, 일단 출구 앞에서 병마용과 팔씨름 한 판 붙어주고, 2호갱을 거슬러 3호갱으로 되돌아갔다. 발굴 순서에 따라 1, 2, 3호갱으로 이름이 붙었지만, 관람 동선은 1, 3, 2호갱 순서로 봐야 했더라.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지. 아내에게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박물관을 돌다 보니, 의구심은 금세 해결됐다. 아내가 다녀간 때는 아직 2, 3호갱을 발굴되기 전이었다. 에이, 싱겁기도 해라. 출구를 나와 만난 거대 병마용 앞에서 가족사진 한 장으로 미안함과 심심함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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