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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Feb 10. 2021

폭군이 되어버린 임신 막달의 나

이대로 주저앉게 되는 건 아니겠지.

임신 37주에 진입했다.

이제 진짜로 끝나간다.


허리 통증, 구부리고 일어나기 힘듦, 방광 압박 및 빈뇨, 심장 두근거림, 불면, 복부 통증 (뭉침 및 가진통) 

모든 신체적 변화 및 고통보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감정 기복'.


서서히 폭군이 되어버리더니 어느새 내가 봐도 악마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곤 한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것을 어떻게 하겠냐 싶으면서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더 힘들어져 버리곤 한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일에 세상 서러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좀 전까지 좋아서 쪽쪽거리던 신랑이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미워져 입술이 3cm 정도 나오곤 한다.


요즘 아가 몸무게를 늘려야 한다는 특명을 받고 열심히 외식을 실천 중인데, 

하물며 어제는 가장 좋아하는 회와 초밥을 배 터지게 먹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그 저녁이 채 소화가 되기도 전에 다시 기분이 안 좋아져 입이 5cm 나온 채 잠 못 드는 늦은 밤을 맞이했다.


크게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세 가지다.


1. 잘할 수 있을까. 

물론 다들 닥치면 다 하게 된다.라고 겁먹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어떻게든 하기야 하겠죠. 

하지만 그 작은 생명이 보게 될 세상이 내 손에 달렸다는 생각이 뻗치게 되면 순간 그렇게 무서울 수 없다.


2. 육아와 나, 홀로 남겨질 시간

몸을 회복하면서 동시에 실전 육아를 돌입해야 한다.

굉장하게 굉장히 소셜 피플이던 나의 삶은 180도 달라질 테고,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이 출산 및 육아란 '엄마'라는 역할에게 더 많은 짐을 지어주게 된다.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할 땐, 최대한 함께하려고 하는 좋은 신랑이고 벌써부터 내 짐을 덜어주겠다고 하는 친정엄마도 있어 참 복이 많다 싶으면서도,

결국엔 나 혼자 해나가야 할 상황(feat. 야근, 회식 등등)이 그려지게 되면 남편도 싫어지고 기분이 지하 3,000m 정도로 내려가곤 한다.


3. 나는 어디에 있게 될까.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에 익숙해지기 위해 잠시 나를 내려놓는 것뿐.

결혼 후 아기를 갖기 전 4년 동안 수없이 마음에 새겨놓았고, 마음의 준비도 되고 이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괜찮지가 않았다.


출산과 휴직을 계기로 커리어 체인지를 계획하고 있다.

얼마간이 될지 모를 새로운 것에 대한 공부와 준비를 하루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니,

이렇게 조급하고 아기를 위해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내가 세상 게으르다는 생각까지 들어버렸다. 심지어 같잖은 모성애도 생겨버리기 시작한 건지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도 치고 올라오곤 한다.


더군다나 앞으로를 위해 신랑이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아기 나오기 전에 스파트를 올린다고 요즘 인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의욕도 없고 힘도 없고 세상 몸이 무거워 누워만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울상이 되고 나니 어제도 새벽녘이 되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원래 김긍정이다.

새벽녘의 다짐은 이러했다. (다시 이성의 끈을 잡고)

나는 지금 남편은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고, 죽었다 깨도 남편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 중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하고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어깨 펴고 파워 당당하게! 


경이로운 경험을 통해 나는 한층 더 성장할 것이고, 

멀리 뛰기를 위해 잠시 도움닫기를 하고 있노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 하루의 기분에 미소를 더 해본다.


세상의 모든 예비 엄마, 현직 엄마, 우리 엄마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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