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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n 19. 2021

큐플릭스 - 태양의 서커스 Part.3 환상적인 계획

(연재소설/판타지/웹소설)

처음부터 보기 1편 링크

https://brunch.co.kr/@qrrating/227 





  아스테이아는 형태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동양인을 인식할 수 있는 한계이기도 했다. 어리고 여린 얼굴선에 비해 내면을 꿰뚫어볼 것만 같은 검은 눈이 곧은 머리카락, 알 수 없는 표정, 목소리와 함께 매 순간 변화하면서 형태를 알 수 없는, 빛을 바라보는듯했다.


  단장은 아스테이아에게 사회를 맡길 셈이다.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얕은 수작은 아니었다. 우리는 일류였고, 아스테이아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아스테이아의 위치는 양측에 공중그네가 내려온 2층의 중심이었고 막사를 둘러싼 모든 곳에서 아스테이아를 볼 수 있다. 하얀 원기둥 위의 그녀는, 아찔하고 아름답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조잘거리는 아스테이아는 평소와 달리 생기 넘쳐 보였다. 나는 관객을 자처하며 아스테이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선한 목소리를 마이크를 통해 증폭시킨다. 그랑 샤피또는 그녀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주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쁘지?”


  미트라는 옆에서 아스테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가운 회색 눈이 잘 어울리는 여자다. 


  “이번 공연 끝나면 은퇴하려고.”


  나는 미트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이제 스물아홉 살이다. 서커스단원, 그중에서도 공중그네나 줄을 타는 단원은 수명이 짧았다. 그녀는 아스테이아와 달리 스스로 자원해 단원이 된 여자였다.


  “내 원래 이름은 유라 마커스야.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없었어. 어머니도 세 살쯤 되던 해 세상을 떠났어.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마커스’는 나뿐이었지. 부모 없는 혼혈아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 아이들은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필사적으로 영어를 공부했지. ‘데이비드 마커스’라는 가짜 아버지를 만들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신다고 거짓말을 했어. 처음으로 친구도 사귈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어.”


  미트라는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렸다. 우두둑- 하는 뼈 소리가 들린다.


  “나머지는 다음에 말해줄게”


  나는 가만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을 걸어오는 일은 잦았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하지 않았다. 은퇴를 앞두고 생각이 많아진 탓이리라.


  내가 다시 아스테이아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단장의 손에 이끌려 무대를 퇴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저 손에서 너를 해방시켜줄게


  공연을 이틀 앞두고 단장은 하루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나는 렌터카를 빌려 아스테이아와 바다에 가기로 했다. 한국에 도착하고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아가 출입국사실 증명서와 운전면허증, 여권을 제시하고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해두었다. 내 아이폰에는 나와 아스테이아의 대화방이 있고 거기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단장은 사업상 지인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아스테이아는 내 옆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고 또 눈을 깜빡였다. 우리에게 소통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스테이아는 소통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으므로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언어라도 금방 배우고 말 터였다. 아스테이아가 수화를 이해할 리 없었지만 나 역시 손을 움직여 대답을 해 보였다.


  우리는 차에 기대 영종도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스라이 저녁노을이 지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아스테이아에게 모든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에게서 너를 해방시켜줄게.’ 아스테이아는 고개를 떨군다. 그 얼굴은 노을빛을 받아 더 슬프고 애잔해 보였다. 잠시 후 아스테이아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죽여줄 수 있어?”


  물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과속하지 않았다.


  서커스는 무수한 합으로 이루어진다. 서커스에 사용하는 단검은 날이 살아있는 것이며, 불 쇼에 사용하는 솔벤트는 폭발물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서커스단의 맹수는 맹수다. 호랑이 조련사는 팔이 하나 없다. 우리는 진짜 세계 속에서 환상을 만든다. 한 치만 삐끗하면 현실의 덫에 걸리고 마는 환상.


  주어진 시간은 6분이다. 늙은 화약공에게 폭약과 솔벤트, 도화선을 훔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졸고 있는 라오슈는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깨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수화를 배웠다. 어렸을 적 화약 사고로 귀를 먹어 말을 배울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그날 공중그네에서 아스테이아의 허리를 낚아채는 기술을 선보일 생각이다.






예고편 : 은퇴를 앞둔 유라 마커스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화 링크




https://open.kakao.com/o/s5iB5T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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