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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Aug 05. 2021

큐플릭스 - 미와는 정원에 있다 Part. 2

(연재소설/판타지/웹 소설)


 고라니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노루처럼 생겨서는 퍽 귀엽기도 하지만, 울음소리만큼은 소름 끼친다. 여자 비명소리만큼 날카로우면서도 좀 더 그로테스크한, 허스키한 소리다. 크리쳐물에 나오는 익룡과의 괴물이라거나, 발정 난 고양이가 영역 다툼을 할 때 내는 소리를 함축적으로(?) 질러내면 그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미와는 언젠가 '늙은 아이의 울음소리'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정원일을 마치고 잠에 들면 좀처럼 중간에 깨는 일은 없었지만, 내 악몽의 80% 정도는 고라니의 ASMR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악몽을 꾼 다음날, 고라니 같은 비명을 지르고 미와를 노려보았다. 미와는 정원에 있었다. 그리고 고라니가 정원을 망쳐놓는 것을 그저 관망하고 있었을 테다.


  "내가 정원을 어떻게... 넌 알잖아."


  "그런데?"

  미와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왜 내쫓지 않았어?"


  "내가 왜?"


  "그러니까 내가 이 정원을 만들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그걸 옆에서 다 보고도 고라니가 정원을 망쳐놓도록 가만히 있었다고?"


  "고라니도 산에서 힘들게 여기까지 내려왔어, 솔직히 말해서-"


  "솔직히 말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원보다야 배고픈 고라니 밥이라도 되는 게 더 보람찬 일 아니야?"


  나는 모종삽(매직 완드라고 부른다) 자루를 쥐어잡고 미와 노려보았다.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먹 고사는 것 말고도- 있을 거야, 분명히 무언가가, 먹고사니즘이니 월급이니 주식이니 관심 없다고! 그런 게 내 정원을 대신하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마법사들이 올거야."


  "마법사?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개봉한 게 1989년이야, 벌써 30년도 전이라고 시인이 죽었는데 마법사가 남아있을 것 같아?" 


  나는 거기서 입을 다물고 흩어진 풀 뙤기 들이며 잔가지 등을 그러모았다. 한때나마 질서를 구성하던 것들에 남은 고라니 이빨자국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찮다. 


  등 뒤에서 '고라니가 너보다 인간적'이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도망친 다음 문을 꼭 닫아놓고 한 뙤기 밭을 정원으로 만드는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거라고, 세상일은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고 -할 수만 있다면 고라니도 네 정원 따위를 털기보다는 공무원이 되거나 회사 정규직으로 입사한 다음 매월 받은 월급으로 시퍼런 풀을 사 먹고 있을 것이고, 나아가 부동산부터 주식, 부업까지 안 하는 게 없을 것이라는 미와의 말은 날카롭고 시리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그러모은 풀 무덤에 미와를 파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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