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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로우킥 – 누적되는 일상의 스트레스

by 허블

격투기를 처음 보는 사람은 로우킥(Low Kick)을 우습게 본다.


“화끈하게 얼굴이나 턱을 노려야지, 허벅지를 차서 뭐 하냐”는 식으로.


관중의 눈은 언제나 화려한 펀치나 하이킥을 쫓는다. 드라마틱한 KO 장면은 대부분 거기서 나오니까.


하지만 시선을 떼지 않고 조금만 더 오래 지켜보면,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눈에 띄는 큰 타격은 없었다. 그냥 허벅지 쪽에 몇 번 “퍽,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멀쩡하던 선수가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한다. 스텝이 꼬이고,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결국엔 다리가 풀려 힘없이 주저앉는다.

“아까부터 맞고 있긴 했는데… 설마 저게 저렇게까지 치명적인 거였어?”


로우킥은 그런 기술이다. 단판 승부를 내는 기술이 아니라,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타격”을 집요하게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겨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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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의 스트레스도 정확히 이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생의 ‘결정적 한 방’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교통사고, 이별, 해고, 배신 같은 거대한 불행들. 마음이 단번에 갈라져 나가는 ‘리버샷’ 같은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먼저 무너뜨리는 건, 대부분 그런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 습관적인 눈치 보기, 끝없는 자기검열, 그리고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난 괜찮아”라는 거짓말.


똑같은 잔소리, 똑같은 표정, 똑같은 답답한 상황이 허벅지에 켜켜이 쌓이다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다리가 툭 꺾인다. 그래서 무너진 사람은 당황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 그날 별일도 아니었어요. 근데 그냥… 갑자기 안 되더라고요.”


그렇다. 그날 갑자기 안 된 게 아니다. 그 전까지 맞은 수백 번의 로우킥이, 조용히 임계점을 넘었을 뿐이다.

로우킥에는 치명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처음에는 별로 안 아프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초반에 들어오는 로우킥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괜찮아, 이 정도는 버틸 만해.” “따끔하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그러다 어느 순간 감각이 이상해진다. 허벅지가 뜨거운지 차가운지도 잘 모르겠고, 내 다리가 내 몸이 아니라 무거운 모래주머니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이제는 굳은살이 박여서 무뎌진 것 같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상대의 킥 한 방에 몸의 중심축이 휘청거리는 타이밍이 온다. 그 순간부터는 단순한 ‘통증’이 아니다. ‘기능의 상실’로 바뀌어 버린다.


일상의 스트레스도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얼굴로 다가온다. 버스가 자꾸 눈앞에서 떠나고, 상사가 말을 툭툭 끊고, 할 일은 자꾸 밀리고, 자고 일어나도 몸이 찌뿌둥하다. 그때 우리는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다들 이 정도는 감수하고 살지.”

“요즘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단순한 “짜증”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게 버겁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별거 아닌 일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떼는 것 자체가 거대한 전쟁이 된다.


그때에도 우리는 습관처럼 자신을 탓한다.


“겨우 이 정도 일에… 내가 멘탈이 썩었구나.”


하지만 그건, 이미 허벅지 근육이 파열된 선수가 마지막 잽 한 대를 맞고 쓰러진 뒤


“내가 엄살이 심해서 졌다”

고 자책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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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누적된 부담(Allostatic Load)’으로 설명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위험 신호를 감지할 때마다 우리 시스템은 ‘비상 모드’를 켠다. 근육은 긴장하고, 심장은 빨리 뛰고, 뇌의 레이더는 위협을 감지하느라 예민해진다. 소화 기능은 멈추고, 잠은 얕아지고, 몸은 회복보다 방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이 과정이 잠깐이면 괜찮다. 라운드가 끝나고 코너에 앉아 쉬면 회복되니까. 하지만 라운드가 끝나지 않고 종이 울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출근은 계속되고, 스마트폰 알림은 24시간 울리고, 뉴스는 불안을 퍼붓고, 집 안의 냉랭한 공기는 걷히지 않는다. 비상 모드는 꺼지지 못한 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당신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로우킥이다.


“저는 사실, 남들처럼 큰일은 없었어요.”


번아웃으로 찾아온 사람들,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진 이들은 자주 이렇게 고백한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비극도 없었고, 누가 봐도 충격적인 사건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의 퓨즈가 나가버렸다고. 그래서 더 혼란스러워한다.


“나만 유난 떠는 거 아닐까?”


하지만 ‘로우킥’이라는 렌즈로 보면 그 고백은 다르게 해석된다.


“눈에 보이는 한 방(KO)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한 번의 큰 사건은 적어도 “이때부터 아팠다”고 원인을 지목할 수나 있다. 반면 자잘한 로우킥들은 언제부터 다리가 썩어들어 갔는지 기억조차 못 하게 만든다.


언제부터였을까. 주말을 보내도 쉰 것 같지 않을 때, 멍하니 스마트폰 스크롤만 내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 친구의 연락조차 귀찮아지고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자”는 포기가 늘어날 때. 그 무기력한 순간들이, 사실은 모두 허벅지에 꽂힌 유효타였다.


로우킥을 막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정강이로 받아내는 ‘체크(Check)’, 거리를 벌리는 ‘스텝’, 타이밍을 뺏는 ‘카운터’. 하지만 어떤 기술보다 선행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이것이다.


“아, 이건 우연한 접촉이 아니라 명백한 ‘공격’이구나.” 라고 알아차리는 것.


“원래 다들 이렇게 사니까”,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로 모든 로우킥을 ‘우연한 충돌’ 취급하면, 몸은 이미 피투성이인데 머리만 “난 괜찮아”라고 우기며 좀비처럼 걷게 된다.


이 장에서 말하는 로우킥은, 당장 당신의 삶을 박살 내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삶의 축을 무너뜨리고 있는 ‘작은 반복들’이다. 출근길마다 가슴이 턱 막히는 회사, 매번 약속을 어기면서도 뻔뻔한 지인, “이번만 참자”를 몇 년째 반복하게 만드는 관계, 아무도 돕지 않는데 독박을 쓰는 업무.


이건 기분 탓이 아니다. 이건 기술이다. 세상이, 혹은 타인이 당신의 허벅지를 정조준해서 계속 차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욱신거린다면, 아마 당신의 영혼 허벅지에도 이미 시퍼런 멍이 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멍이 들었다고 해서 경기에서 탈락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전략을 바꿔야 한다.


그동안 “괜찮은 척” 버티는 데 써 왔던 힘을, “이건 로우킥이다”라고 이름 붙이는 데 나눠 써 보자.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를 차고 있는지. 그리고 혹시 나 스스로가 “이 정도는 견뎌야지”라며 내 허벅지에 ‘셀프 로우킥’을 날리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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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로우킥이 단지 발차기가 아니라, 삶 곳곳에 은밀하게 숨겨진 ‘반복된 스트레스’라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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