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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스트레이트– 팩트폭력도 폭력이다

솔직한게 아니라 무례한 것

by 허블

로우킥과 리버샷이 몸 여기저기를 서서히 갉아먹는 기술이라면, 스트레이트(Straight)는 아주 단순한 기술이다. 짧은 거리. 직선 궤도. 정면에서 들어오는 한 방.


그래서 이름도 그대로다. ‘곧은 주먹’.


경험이 적은 관객은 화려한 회전 킥이나 점프 공격에 눈길을 뺏기지만, 실제로 수많은 경기를 끝내는 건 예측하기 어려운 묵직한 훅, 혹은 타이밍을 뺏는 정확한 스트레이트다. 정면에서 들어오는데도, “보였는데도” 피하지 못하는 한 방. 뻔히 알면서도, 고개가 젖혀질 만큼 세게 맞는 직선.


우리 삶에도 그런 스트레이트가 있다. 준비도, 방어도, 완충 장치도 없이 정면으로 꽂히는 말들.


“너 그거밖에 안 돼?”

“그러니까 네가 안 크는 거야.”

“집에 돈이 없어서 그렇지 뭐.”

“그런 성격으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이해했다. 들리는 순간, 의미가 뇌에 바로 박힌다. 그런데도 피하지 못한다. 나를 향해 뻗어 오는 그 말을 옆으로 흘려내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로 받아낸다. 그리고 잠깐 멍해진다. 표정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붙들고 있지만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팩트폭행”이라고 부른다. 사실이라는 이유로, 정확하다는 이유로, 상대의 숨을 턱 막히게 만드는 말.


특히 최근 유행하는 “너 T야?”라는 밈(Meme)은 이 현상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 말은 겉으로는 MBTI의 이성적 성향(Thinking)을 묻는 농담처럼 쓰이지만, 그 이면에는 감정을 배제하고 ‘효율’과 ‘사실’만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태도에 대한 씁쓸함이 묻어 있다.


링 위에서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사람들은 종종 이 ‘T의 가면’을 쓴다. 그들은 상대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의아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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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없는 말 지어낸 게 아닌데?”

“감정적으로 굴지 말고, 팩트만 봐.”

“내가 틀린 말 했어?”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틀린 말이 아니면, 다 해도 되는 걸까? 팩트라고 해서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든 던져도 괜찮은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다.


링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스트레이트는 좋은 기술이고, 상대의 빈틈을 찾는 건 훌륭한 전략이다. 하지만 규칙(룰)이 없는 곳에서, 글러브도 끼지 않은 맨주먹으로, 방어 태세도 갖추지 못한 사람의 얼굴에 불쑥 주먹을 꽂아 넣으면 그건 기술이 아니라 ‘폭행’이 된다.


일상에서도 이 폭행은 아주 그럴싸한 포장지에 싸여 배달된다. 가장 흔한 포장지는 바로 ‘솔직함’이다.


“나는 뒤끝이 없어.”

“나는 돌려 말하는 거 딱 질색이야.”

“솔직히 말해도 돼?”


이런 말을 자랑처럼 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 말 뒤에는 종종 이런 무서운 뜻이 숨어 있다.


“이제부터 너를 때리겠다. 하지만 너는 피하지 말고, 기분 나빠하지도 마라. 나는 ‘솔직한’ 사람이니까.”


이건 솔직한 게 아니다. 그저 ‘무례한’ 것이다. 진짜 솔직함은 나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타인의 마음에 흙탕물을 튀기는 것이 아니다. 배려가 제거된 솔직함은, 그저 안전장치가 제거된 흉기일 뿐이다.


트래시 토크(Trash Talk) 역시 격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경기 전, 선수들은 서로를 자극하고, 자존심을 건드리고,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로 먼저 싸움을 시작한다.


“난 네가 지금까지 이긴 애들이랑 체급이 달라.”

“너는 이미 끝났어.”

“너 같은 스타일은 1라운드면 분석 끝이야.”


이건 고도의 심리전이다. 말로 상대의 멘탈을 흔들어 놓으면, 실제 경기에서 실수를 유도하기 쉽다. 화가 난 사람은 거리를 잊고 무모하게 달려들고, 자존심이 상한 사람은 평소처럼 냉정하게 눈을 쓰지 못한다. 주먹이 닿기도 전에, 말이 먼저 사람을 깨뜨리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사각의 링 밖에서도 서로에게 똑같은 짓을 한다는 점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단체 채팅방에서.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앞에 이런 완충 문장을 조금 붙여 놓고, 그 뒤에는 영락없이 날카로운 스트레이트와 트래시 토크가 이어진다.


“너는 맨날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내잖아.”

“넌 항상 네 생각만 해.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거야.”

“넌 원래 그런 애잖아.”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뭐 어때”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맞는 쪽에서는 다르게 느낀다. 이건 정보를 전달하는 문장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바닥으로 찍어누르는 한 방이다.


“넌 원래 그런 애”라는 말은, “네가 지금 느끼는 고통과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은 애초에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잔인한 선언과도 같다.


우리는 흔히 ‘언어폭력’이라고 하면 욕설이나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상황을 떠올린다. 그래서 톤이 차분하거나, 욕설이 섞이지 않으면 “그냥 말이 좀 직설적인 거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폭력은 톤이 침착할 때 일어난다. 냉정한 표정으로, 논리적인 척하며, 사람을 서서히 부식시키는 말들.


이 말들은 겉보기에는 ‘현실적인 조언’처럼 보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자기 존재 전체를 부정당하는 수치심을 남긴다. 스트레이트의 특징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짧고, 단순하고, 정면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방어가 어렵다.


말로 하는 폭력의 가장 골치 아픈 점은, 눈에 보이는 상처가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고 나서 코피가 터지거나, 눈두덩이에 멍이 퍼렇게 들지 않는다.


대신, 그 말을 들은 밤의 긴 침묵, 혼자 있을 때 다시 떠오르는 장면, 샤워하다가 갑자기 샴푸 냄새와 함께 엮여버리는 비참한 기분, 출근길 계단에서 문득 느껴지는 울렁거림 같은 것들이 남는다.


그래서 돌아서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때린 사람은 이미 잊고 지나갔을 수 있다. 그들에게는 그저 스파링하듯 가볍게 툭 던지고 “쿨하게” 털어버린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은 쪽에서는 그 한두 마디가 마치 본인의 이름표처럼, 떼어지지 않는 라벨처럼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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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끝을 못 내는 사람이다.”

“나는 원래 문제를 일으키는 성격이다.”

“나는 남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 문장은 더 이상 타인의 의견이 아니다. 어느새 자기 자신에 대한 ‘내부 독백’이 되어버린다.


이 지점에서 트래시 토크는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붙는다. 이제 굳이 누가 와서 말로 때리지 않아도, 나는 거울을 보며 나에게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역시 넌 안 되는 애야.”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말의 내용이 사실(Fact)이든 아니든, 배려 없는 말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둘째, 폭력이었던 말을 나중에 내가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새로운 출발선 앞에서 “그때 들었던 말”의 잔향을 느끼며 주저앉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어차피 넌 원래 이런 애잖아”라는 과거의 트래시 토크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된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상사의 목소리도, 부모의 목소리도, 옛 연인의 목소리도 아니다. 이미 내 목소리가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말로 하는 폭력 앞에서 영원히 무력할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스트레이트를 막는 가드 기술이 있는 것처럼, 트래시 토크에 대한 방어도 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 첫 단계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지금 이 말, 정보(Information)인가, 공격(Attack)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정보라면, 그 말에는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그리고 ‘변화 가능성’이 포함된다. “지금 이 방식으로는 마감 맞추기가 힘들 것 같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네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힘들었다고 하니까, 앞으론 내가 조심할게.”


반면 공격이라면, 대개 너의 ‘정체성’에 바로 들러붙는다.


“넌 원래 그래.”

“너는 항상 이 모양이다.”

“너 같은 애들은 어딜 가도 똑같아.”


정보는 상황을 바꿀 여지를 열어 놓지만, 공격은 사람 자체를 고정시키고 낙인찍으려 한다. 그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선택할 수 있다. “이건 내가 받아들여야 할 피드백인지, 아니면 그냥 흘려보내야 할 쓰레기인지.”


물론, 그 선택이 항상 즉시 가능한 건 아니다. 이미 한 방 세게 맞은 뒤에는 숨을 고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적어도, 예전처럼 날아오는 모든 주먹을 내 탓이라며 얼굴로 받아내지는 않게 된다.


이 장의 마지막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모두 피해자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스트레이트를 날린 적이 있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의도와 상관없이, 피곤해서, 짜증 나서, 혹은 정말로 그 사람을 위한다는 착각에 빠져서 팩트폭행을 휘두른 적이 있다. 그때의 우리는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너무 답답해서 그랬어.”

“나라도 ‘솔직하게’ 말해 주지 않으면 쟤는 평생 저럴 거야.”


다만, 이 책을 여기까지 읽은 지금만큼은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가 어디를 가격하고 있었는지를 한 번 더 떠올려 보면 좋겠다. 상대의 행동을 교정해 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 사람의 가장 약한 다리, 무방비한 가슴, 혹은 아물지 않은 오래된 상처 위를 정면에서 때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앞으로 배워야 하는 건 말을 안 하는 법이 아니다. 내 말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세게 날아가는지를 조금 더 정확히 보는 ‘거리 감각’일지도 모른다.


다음 장에서는 조금 더 은근한 기술로 넘어가 보려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가볍게 다리를 건드리는 것 같지만, 계속해서 마음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킥. 카프킥, 그리고 아들러가 이야기했던 열등감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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