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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암바 – 가스라이팅은 따뜻한 포옹처럼

by 허블

격투기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암바(Armbar)는 조금 기묘한 기술이다.


멀리서 보면 두 선수가 뒤엉켜 껴안고 땅바닥을 뒹구는 것 같다. 어깨를 감싸고, 다리로 상대의 몸통을 조이고, 심장과 심장이 맞닿을 만큼 밀착되어 있다. 마치 격렬한 포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 선수가 상대의 몸이나 바닥을 다급하게 두드린다. “탁, 탁, 탁!” (Tap out) 그 순간 심판이 뛰어들고 경기는 끝난다.


“아니,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때리지도 않았잖아?”


슬로 모션으로 다시 보면 그제야 소름 끼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 선수의 팔꿈치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꺾이기 직전까지 팽팽하게 펴져 있고, 다른 선수는 그 팔을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에 끼운 채 온몸의 체중을 실어 당기고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거리(Distance)’다. 멀리서 주먹을 뻗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 붙어서 조이는 것. 포옹과 제압이 거의 구분되지 않는 위험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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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심리적인 암바와 같다. 가스라이팅은 멀리서 “너는 쓰레기야!”라고 소리치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은 달콤한 속삭임에 가깝다.


“내가 널 제일 잘 알아.”

“다른 사람들은 다 널 오해해도, 나는 네 편이야.”

“솔직히 말해주는 건 나밖에 없어.”


가까이 다가와서, 귀에 대고 비밀을 공유하듯 건네는 말들. 처음에는 든든하다.


“그래, 이 사람은 적어도 내 진짜 모습을 봐주는구나.”


암바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상대의 몸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끌어안고, 안심시키고, “괜찮아, 이리로 와” 하고 품 안으로 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팔의 각도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지점까지, 아주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조여온다. 빠져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가는 늪 같은 거리.


가스라이팅은 “너 미쳤어?” 같은 욕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주, 더 치명적으로 쓰이는 문장은 이런 것들이다.


“그건 네가 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

“그때 상황을 다시 생각해 봐. 그렇게 나쁘게 볼 일은 아니었잖아.”

“네가 기억을 잘못한 것 같은데? 난 그런 적 없어.”


이 말들의 공통점은,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감각’과 ‘기억’을 부정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느끼는 네가 이상한 거야.”


사실은 분명히 아팠고, 괴로웠고, 모욕적이었다고 느꼈는데도, 이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나침반이 고장 난다.


“어? 내가 진짜 이상한 건가?”

“내가 또 과민 반응했나?”


팔꿈치가 꺾이기 직전까지 통증을 느끼는 관절처럼, 우리의 감정과 판단력에도 분명히 버티는 힘이 있다. 하지만 반복해서 “네가 틀렸어”라는 압력이 가해지면, 그 마음의 관절은 결국 방향을 잃고 꺾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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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이 특히 지독한 이유는, 상대가 항상 악마의 가면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분명히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를 주는데, 때로는 세상 누구보다 잘해주고, 비싼 선물을 사주고, 눈물을 흘리며 안아줄 때도 있다.


“너 말투가 진짜 사람 질리게 하는 거 알아? 그래도 내가 너 사랑하니까 옆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아니었으면 난 벌써 떠났어. 내가 널 위해서 얼마나 참는지 알아?”


한 손으로는 팔을 꺾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패턴. (간헐적 강화) 그래서 이 관계를 떠나려 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래도 나한테 잘해준 것도 많은데…”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 하는 걸 수도 있잖아.”

“저 사람 말대로, 문제는 결국 나일지도 몰라.”


암바에 걸린 선수도 비슷한 공포를 느낀다. 처음엔 포지션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가까이 붙었고, 따뜻하게 엉켜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내 팔 하나가 상대에게 완전히 장악당했다는 걸 깨닫는다. 내 팔인데,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여기서 살짝만 더 힘을 주면 뼈가 부러질 것 같다.


이때 선택지는 둘뿐이다. 탭(Tap)을 치고 자존심을 버리든가, 아니면 팔이 부러지든가.


가스라이팅 관계에서도 비슷한 임계점이 온다. “이건 더 이상 아닌 것 같다”는 경고음이 가슴 한가운데에서 요란하게 울릴 때. 하지만 쉽게 탭을 치고 링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서로 공유한 시간, 주고받았던 내밀한 약속, “너밖에 없다”는 달콤한 선언들이 마치 철창(Cage)처럼 둘을 가두고 있다. 게다가 가해자는 결정타를 날린다.


“나 아니면 누가 너 같은 애를 받아주겠어?”

“어디 가서도 너 같은 성격은 환영 못 받아.”


그 말을 주문처럼 계속 들으면, 그게 진짜 현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관계가 지옥 같다는 건 알겠는데, 떠난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이 있을까? 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할 텐데…”


팔을 빼고 싶은데, 빼고 나면 팔이 없는 병신이 되어 링 한가운데 버려질 것 같은 공포. 그래서 버틴다. 아프지만 참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지만 관절은 한 번 꺾이고 나면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가스라이팅의 가장 교묘한 점은 늘 “너를 위해”라는 포장지를 쓰고 배달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쓴소리까지 하는 건, 정말 네가 잘됐으면 해서야.” “다른 사람들은 너한테 이런 말 안 해줄걸? 나니까 총대 메고 말해주는 거야.”


이 말들이 반복될수록 상처는 기묘하게 곪아간다. 분명히 아픈데, 이걸 ‘폭력’이라고 인정하기가 어렵다.


“나를 사랑해서 한 말이라잖아.”

“정말로 내 단점을 고쳐주려는 거라면, 내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때부터 피해자의 판단 회로는 꼬이기 시작한다. “이건 폭력이야”라고 부르기엔 상대의 의도가 너무 선해 보이고, “이건 조언이야”라고 받아들이기엔 내 영혼이 너무 너덜너덜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 어딘가, ‘지옥의 회색지대’에서 맴돈다. “나도 문제가 있긴 해.” “저 사람도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야. 표현이 좀 거칠 뿐이지.”


그러는 사이, 암바는 조금씩 더, 뚝 소리가 날 만큼 꽉 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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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완벽한 정답은 없지만, 단 하나의 질문만큼은 분명하게 던져볼 수 있다.


“이 관계 안에서의 나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아니면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가?”


진짜 조언과 가스라이팅을 가르는 기준은 ‘관계 속 나의 크기’다.


나를 위한 진짜 조언이라면, 듣고 난 뒤에 아프더라도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거나,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보이거나, 적어도 “그래, 이렇게 해보면 되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반면 가스라이팅이라면, 듣고 난 뒤에 세계가 좁아진다.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감옥 속에 내 미래가 갇힌다. “너 같은 애를 받아줄 사람은 나뿐”이라는 말 속에서 나의 모든 가능성이 잘려 나간다.


그리고 결국, 이런 비참한 내면의 독백으로 귀결된다.

“나는 이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


이 느낌이 반복된다면, 당신은 이미 심리적 암바에 깊숙이 걸려 있는 것이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 = 멍청하고 의존적인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다.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살피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한 번 맺은 인연을 함부로 놓지 않으려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일수록 이 기술에 더 취약하다.


팔 하나를 내어주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상대에게 안도감을 주려는 사람.


“내가 좀 더 참고 이해하면, 이 사람도 변할 거야. 우리 관계는 좋아질 거야.”


자기 몫 이상의 고통을 버티는 사람일수록 암바에 더 오래, 더 깊게 걸려 있게 된다. 이건 당신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선함과 인내심이 당신을 향해 흉기로 뒤집혀 사용된 결과다.


그러니 가스라이팅을 이야기할 때 “왜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었어?”라고 묻지 말자. 대신 이렇게 물어주어야 한다.


“당신의 어떤 다정한 마음이, 당신을 그렇게 오래 버티게 만들었을까?”


그 질문이야말로, 꽉 조여진 팔꿈치에서 조금씩 감각을 되찾고 탭을 칠 용기를 주는 첫 단계다.


이 장에서 가스라이팅을 단순히 ‘악마의 기술’로만 그리려는 건 아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타인을 조종하고 파괴하려는 소시오패스도 존재한다.


하지만 더 흔한 경우는, 자신도 상처받은 방식대로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들이, 서툰 방식으로 서로의 관절을 꺾고 있는 비극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폭력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이건 아니다”라고 선언할 힘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 준다.


“저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지”라는 연민(이해)과, “그래도 나는 여기서 내 팔이 부러지게 두지 않겠다”는 단호함(결심)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연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쥐는 법이다. 상대의 아픈 역사도 이해하려 애쓰되, 나의 관절이 더 이상 꺾이게 방치하지 않는 태도.


다음 장에서는 이제 말이 아니라 술과 약, 혹은 자조적인 농담 뒤에 숨는 기술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마치 취권처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아픔을 잊기 위해 싸움판을 버티려는 사람들.


취권과 하트브레이크 펀치. 회피와 중독, 그리고 실연의 심리에 대해 조금 더 깊숙이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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