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거 같다.
장녀이기도 했고 나이 차가 크게 나는 동생들이 둘이나 있어서 나는 늘 조용하고 표정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 친해지고 싶던 같은 반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기회가 생겼다. 말주변도 없고 소극적이던 나는 그냥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기 뭐 해서 웃었다. 맞장구를 치며 웃어주자 그 아이가 좋아했다.
아 이건가.
그때부터 나는 어색한 분위기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앞에 있으면 웃었다. 그러면 만사형통이었다. 내가 웃으면 호의적인 분위기가 되고 어색해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평소 웃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웃기 시작하니 며칠 지나자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안 웃다 갑자기 계속 웃으니 얼굴이 적응을 못 한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소근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평소 잘 안 쓰던 자기를 갑자기 마구잡이로 쓰기 시작하니 경련이 오고 아플 수밖에... 그래서 이제 좀 덜 웃어볼까 했는데. 갑자기 안 웃으려니 분위기가 불편해 못 견디겠는 것이다. 근육 따위가 차라리 아프고 말지. 분위기가 삭막한 건 정말 못 견디겠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쓸데없는 것에도 항상 웃기 시작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웃기 시작하면서 친구도 많이 생겼고 그전보다는 활발해졌다. 그리고 웃으면서 정말 웃기고 활기차 졌다. 행동하는 데로 인생은 흘러간다는 말이 맞는 건가 보다. 내가 슬프다고 생각하면 어떤 조건이라도 계속 한없이 슬프고 내가 기쁘다고 생각하면 땅바닥에 누워 뒹굴어도 기쁘다.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내가 웃으며 살게 됐지만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우울한 사람에게 억지로 웃어보라고 하는 건 오류겠지만 어찌 보면 정답이다. 그럴수록 웃어야 한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고 까지고 아파도 하하 호호하는 능력을 쌓는다면 이 세상에 무서울 건 없다.
웃음은 생각보다 힘이 강하다.
내가 30년을 웃어보면서 많이 느꼈다. 아무리 웃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웃긴 포인트가 하나씩은 있다. 하다못해 예능이나, 연인, 친구, 반려동물, 자식, 가족 등등. 자기가 갖고 있는 웃음 포인트를 발견해 억지로라도 많이들 웃고 살았으면 좋겠다. 웃으면 그 웃음 바이러스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번져 주변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감염된다. 그렇게 웃다가 소근이 그만하라고 경련을 일으킬지언정.
오늘 하루도 우리 모두 크게 웃고 시작해 봤으면 좋겠다.
웃는 건 돈이 드는 일이 아니니까.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