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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by 박성희

아버지는 늘 나를 다정하게 "딸!"이라고 불렀다.



"딸, 아이스크림 먹을까?"

"딸, 우리 놀러 갈까?"



그래서 아직까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딸”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곤 한다. 경제적인 지원은 부족했던 아버지였지만 나를 정말 사랑해줬다는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외동딸이었던 기간도 길었고, 삼 남매 중 유일한 여자아이였으므로 아버지는 나에게는 정말 다정하셨다.


내가 시험을 잘 못 보고 친구들과 놀러 다녀도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오더라도 한 번도 나를 손찌검하지 않으셨다.


내가 큰 잘못을 해서 꼭 혼내야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그냥 나를 불렀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 앞에 무릎 꿇려 놓고 한참을 그냥 쳐다만 보셨다. 세상에서 가장 근엄하고 화난 얼굴을 하고선 말이다. 그런 아버지의 눈을 보고 있자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되새기며 저절로 반성하게 된다. 한 번은 다리가 너무 저려서 차라리 손이나 엉덩이를 때리고 빨리 끝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무 말 없이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하는 아버지 앞에 앉아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아마 동생들이 이 소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와는 달리 동생들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던 아버지였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시대는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으로 체벌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집을 나가기 몇 해 전 봄이었다.

OO리에 해당하는 우리 동네는 3가지 마을로 나뉘어 있다. 산을 넘자마자 등장하는 첫 번째 동네. 즉 아랫마을이라고 불렀다. 마을회관, 노인정, 유치원, 슈퍼 등이 있고 15개 정도의 집이 모여있는 동네였다. 그리고 그 동네를 벗어나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일명 새마을이라고 불렀던 조금 더 큰 동네가 나온다. 새마을에는 초등학교, pc방, 군부대, 노래방, 식당, 작은 버스터미널 종점, 소방서 등이 있고 30개 정도의 집이 모여 사는 이름만 새마을인 마을이 있었다.


우리 집은 아랫마을과 새마을의 중간에 있는 외딴섬 같은 더 작은 마을이었다. 아랫마을과 새마을의 길 중간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샛길을 따라 들어가면 작은 산 아래 위치한 동네에 바로 우리 집이 있었다. 4~5개의 집만 모여 사는 금수동이 진정한 우리 동네였다. 왜 우리 동네만 특이하게 이름이 금수동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깨끗하고 맛 좋은 물이 나온다 하여 그리 불렀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강원도 어딜 가나 깨끗하고 맛 좋은 물이 나오지 않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그냥 마실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날은 학교에 갔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따라 쭉 10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마당에서 화난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동생들을 세워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초콜릿 때문에 그런다~ 어휴”

“얼른 바른대로 말하지 못해! 거짓말은 용서 못 해!”



이주 전쯤 화이트데이라고 아버지가 엄마 주려고 사 왔던 초콜릿을 안방 서랍 위에 올려놨는데, 그게 오늘 없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혼내려던 게 아니라 누가 먹었냐고 물어봤던 거였는데 서로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얼른 잘못했다고 말씀드려~ 누가 먹은 거야?”



타이르는 엄마를 보고도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두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난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만 좀 해요. 그깟 초콜릿 때문에 애들을 이렇게까지 혼낼 일이야?”



보다 못한 엄마가 아버지를 나무라셨다.



“이게 단순히 초콜릿 때문이 아니야! 거짓말을 하잖아. 지금! 거짓말은 용서가 안 돼. 너희 오늘 진실을 말할 때까지 둘 다 계속 맞을 줄 알아! 엉덩이 대!”



그날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 모습 중에 가장 화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사람은 항상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단순한 거짓말 일지라도 어린 동생들의 버릇을 고쳐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결국, 그날 둘째 동생의 거짓말로 판결이 났고, 다시는 아버지 앞에서 작은 거짓말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던 사건이었다.


이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 이런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아버지는 우리를 정말 아끼셨고 바르게 키우려고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그렇게 아끼던 아버지는 떠났다. 그게 과연 무슨 이유였을까. 우리보다 더 소중한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 이유를 알고 싶다가도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유를 알게 되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아버지를 이해해서 마음이 아플까 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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