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의 사전적 의미는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진상이 많다. 솔직히 치위생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깊이 체감하지 못했다. 나름 어렸을 때부터 식당, 문구점, 평생교육원, 일용직, 단기행사 등등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다양하게 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치과에서 일하면서 적어도 세 달에 한 번은 진상을 만나지 않았나 싶다.
치과는 의료기관인데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치료받으러 왔는데 환자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게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과하게 친절한 것도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내가 13년 동안 일하면서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사건 몇 개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사건은 환자가 한창 들이닥치는 시간에 일어났던 일이다. 처음 온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환자분이 접수를 원하셨다. 그런데 들어와서 등록하기 전에 처음 내게 한 질문이 이거였다.
“여기 원장님 여자분이세요?”
“네. 여자분이세요”
그리고 안심한듯한 표정으로 접수증을 작성하고는 대기실에 앉았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안내를 도와드렸고 어금니가 불편하다는 내용에 원장님이 진단하셨다. 육안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치아를 흔들어봤을 때 움직임이 심해 뼈 상태 체크를 위해 환자분의 동의를 얻은 후 파노라마 엑스레이 촬영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엑스레이상에 뼈가 많이 녹아 치아를 빼야 할 수준이었다. 환자분이 원하지 않으시면 일단 잇몸치료라도 해보겠다고 설명을 했다.
환자분은 치료는 생각해 보겠다며 내려오셨다. 여기까지는 뭐 언제든 볼 수 있는 환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데스크에서 터졌다. 앞서 설명해 드렸던 파노라마 촬영비가 8천 원 내외로 발생되어서 진료비를 말씀드렸으나 들려오는 답변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돈 없는데요?”
“네? 아까 파노라마 촬영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해 드렸는데요?”
“돈 한 푼도 없어요. 카드도 없어요”
나는 무슨 소리지?라는 생각으로 벙쪄서 환자분을 바라봤다. 하지만 농담도 거짓이 아닌 진심이라는 표정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진료를 보시면 진료비가 발생하세요. 그러면 계좌이체라도 해주시겠어요?”
“계좌도 없는데요?”
이때는 정말 이성의 끊어질 뻔했다. 뻔뻔한 태도에 절대 돈을 못 내겠다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요? 네. 일어나더라고요. 당황한 나와 환자분의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뒤로 환자가 밀리고 대기실이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진료 중 이런 상황을 전달받은 원장님이 데스크로 나와 비용을 지급하셔야 한다고 정중하게 설명했지만 일관된 태도에 결국 그냥 보내드렸다.
나중에 근처에 일하는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로는 그 병원에도 똑같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30대 후반이 남자가 다녀갔다고 들었다. 당시에는 너무 충격적이고 상습범이라는 생각에 황당했다.
두 번째 사건은 초등학교 5학년쯤 되는 아이와 함께 내원한 엄마였다. 아이의 검진을 위해 방문했던 엄마는 치과 입구부터 하기 싫다고 울어대는 아이에게 많이 지쳐 보였다. 결국 진료 의자에 앉아서 하지 않겠다고 짜증을 냈고 달래 가며 검진을 했지만 치료할 것이 몇 개 보여 보호자에게 설명드렸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해서 하지 않겠다고 했고 너무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억지로 붙잡고 진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어린이 치과를 권유해 드렸고 검진만 하고 아이는 내려오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내려오려고 치과의자에 앉아 입을 헹굴 때 일어났다. 짜증이 난 아이가 입을 헹구고 물을 타구가 아닌 바닥에 뱉어 버렸고 직원이 휴지를 뽑아 물을 닦았다.
그런데 데스크로 나온 보호자가 한 말에 나는 또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애가 물을 바닥에 뱉을 수도 있지. 물 닦는 직원 표정이 왜 저래요?”
우리 직원의 표정은 무표정이었고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무슨 표정을 보셨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닥에 뱉은 물을 웃으면서 닦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황한 내가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
“아니 왜 표정을 그렇게 하고 물을 닦느냐고요? 직원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바닥에 뱉은 물을 닦는데 직원 교육까지 운운할 일인가. 하지만 여기서 내가 무슨 대답을 해도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그냥 나는 사과했다. 죄송하다고. 그러자 보호자는 입을 닫았고 결제를 하고 돌아갔다. 그냥 죄송하다는 말이 듣고 싶으셨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 남은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시 내가 치과에서 진상짓을 한 건 아닌가 의심해 본다면 진상짓을 한 게 아니다. 진정한 진상은 자기가 진상 인지 의심도 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에 자식이 아닌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간혹 사람들이 이걸 잊어버리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기 자식이나 부모는 소중하지만 넌 소중하지 않다는 걸 이렇게 온몸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요즘 콜센터에 전화하면 나오는 단골 통화연결음이 있다. 바로 전화기 너머 상담사는 우리의 가족, 친구, 이웃이라는 점을 떠올려주세요.라는 짧은 한마디. 이런 통화연결음을 듣지 않더라도 전화기 넘어 나의 불편사항을 도와주는 직원에게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 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