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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Mar 31. 2021

♨11. 나는 '파'에 진심이다.아빠의 파테크 이야기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면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이렇게 소중한 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파란 옷, 흰색 옷을 입고 한껏 뽐내는 그녀를 만날 때면 설렌다. 항상 우리 가족에게 멋진 추억을 가져다준다.


오늘은 '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다른 재료는 조금 부실해도 되지만 파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거의 모든 음식에 파는 꼭 필요하다. 냉장고에 파가 떨어지는 날은 불안불안하다.



파만 있어도 충분한 아빠표 볶음밥


막내 녀석이 밤에 출출하다고 한다. '키가 크려나...?'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고 한다. 막내와 아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빠를 바라본다. 결국 나는 냉장고로 향한다. 뒤적뒤적해보지만 마땅한 재료가 없다.


파와 계란을 꺼내 든다. 파를 잘게 다져 식용유를 두르고 충분하게 볶아낸다. 노릇하게 볶아지면 파기름이 만들어진다. 파를 프라이팬 한 켠으로 몰고 계란 3개를 깨뜨려 넣는다. 휘이휘이 저어 계란 스크램블을 만들어준다. 냉동실에 있던 냉동새우도 같이 볶아준다. 뜨겁게 달궈진 팬에 간장 한 숟가락을 끼얹고 간장의 향을 입힌다. 그리고 식은 밥을 턱 넣어주고 잘 볶아준다. 맛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어도 좋고, 굴소스가 있다면 약간 넣어서 볶아준다. (굴소스는 많이 넣으면 짜다.) 막내 녀석의 허기를 달래주는 소박한 달걀 볶음밥이다.


피드백을 바라는 아빠의 기대 섞인 눈빛을 느꼈는지 아들 녀석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린다.

막내 입맛을 만족시킨 볶음밥의 맛을 이끌어낸 것은 '파' 덕분이다.

아빠표 볶음밥


아빠표 청국장에도, 김치찌개에도, 순두부찌개에도, 떡볶이에도, 라면에도 파가 들어간다. 우리 집에는 파가 없으면 정말 곤란하다.



대파 한 단에 만원? 도시농부가 되어야겠다.


대파를 사러 마트에 들렸다가 발길을 돌렸다. 대파 한 단이 만원에 육박했다. 2천 원이면 사던 대파 한 단이 만원이라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온라인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를 검색했다. 대파를 박스로 구입했다. 마트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대파를 대량으로 사면 보관이 문제다. 촙촙 잘라서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냉동실에 보관한 대파는 볶음요리를 할 때 좀 질척거린다. 개인적으로 냉동실 보관을 좋아하지 않는다. 파를 싱싱하게 오랫동안 보관할 필요성을 느꼈다.


겨울에는 제법 큰 봉지를 골라 바닥에 흙을 깔고 물을 조금 뿌려 수분을 머금도록 하고 대파를 넣었다. 해가 들지 않는 그늘진 다용도실에 보관했다. 가끔씩 물을 뿌려주면 생각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화면 캡처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df_lDyAqsiQ)


날이 따뜻해지면서 보관방법을 바꾸었다. 안 쓰는 화분에 앝게 심기로 했다. 오래 버텨만 주면 된다는 생각에 화분에 파 한 단을 통째로 넣고 심어서 보관하고 있다.


요리를 할 때면 농부가 된 기분이다. '나만의 농장'으로 가서 대파를 수확한다. 요리를 하다가 대파가 필요할 때면 파 한쪽을 쑤욱 뽑아 쓴다. 요리 하나에 대파 한쪽이다.

농부 분들이 보면 소꿉장난이지만, 평생 처음 느껴보는 수확의 기쁨이다. 도시 농부를 흉내내 본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파가 떨어져 간다. 한 박스 더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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