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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an 03. 2022

아내가 대범해졌다.

<갱년기>란 성호르몬(sex hormone)의 감소로 인해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을 의미한다. 갱년기는 주로 중년 여성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30대 후반부터 성호르몬 분비가 서서히 감소하는 남성에게도 나타난다. 
<서울 아산병원 홈페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남성 호르몬이라는 녀석이 있다.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놈이다. 이 녀석이 남성의 신체 건강, 정신 상태를 조절한다. 남성다움과 성생활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다.


문제는 이 녀석이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는 것이다. 30대부터 해마다 약 1%씩 감소하여, 50~70대 남성의 약 30~50%는 정상치보다 감소된다. 남성 호르몬이 감소하여 몸과 마음의 이상반응을 '남성 갱년기(Andropause)'라고 한다. 남성 갱년기라는 용어가 생소하다. 갱년기는 여성에게 일반적인 증상인 줄 알았다. 무지했다.



요즘 들어 몸이 좋지 않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낀다. 체력은 자신 있었는데 요즘은 이유없이 피곤하다.(필자는 대학시절 아마추어 운동선수로도 활동했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는 것이 버겁다. 5분을 넘어가는 유튜브 콘텐츠도 잘 안 보게 된다. 뱃살은 점점 늘어간다. 소식도 해보고, 간헐적 단식도 해보는데 뱃살은 그대로다. 1년 이상 등 통증이 계속되었다. 올해 건강 검진 결과에서 각종 지표도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편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내과에서도 정형외과에서도 뾰족한 답을 주지 못했다.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술을 줄이고 운동을 좀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 근처 한의원을 들렀다. 이런저런 문진과 촉진을 하더니 '남성 갱년기'를 의심해볼 수 있다고 한다. 한달치 한약을 처방받았다.  

'내가 갱년기라니...'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출처 : gettyimagesbank>


나는 소심해졌다. 아내는 대범해졌다.


그러고 보면 요즘 부쩍 감정의 변화가 잦기는 하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이 절로 난다. 아내는 '뭘 그런 것으로 우냐'고 핀잔주기 일쑤다. 작은 일에도 서운해진다.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무기력한 연말을 보낸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이 그랬다. 청년 시절부터 있던 M자 탈모가 나름대로의 콤플렉스였다. 50에 접어든 기념으로 모발이식을 결정했다. 주변 사람들 모르게 조용하게 수술하고 싶었다.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발 이식 수술은 잘했냐는 전화였다. 아내에게 들었다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버럭 화를 냈다. 왜 쓸데없이 동생에게 이야기했냐고 화를 냈다. 아내가 같이 소리를 높였더라면 커질 싸움이었다. 오히려 아내는 쿨하게 바로 미안하다면서 나를 토닥였다. 별 것 아닌 일에 화낸 내가 머쓱해졌다. 요즘은 아내가 더 대범해지는 것 같다. 내가 더 소심해지는 것 같다. 이것도 남성 호르몬의 영향일까?   




1번과 2번 질문 모두 '그렇다'에 해당되거나, 혹은 3번부터 10번 질문에서 3개 이상 ‘그렇다’에 해당하는 경우 남성 갱년기를 의심할 수 있다고 한다.  <출처 : 서울 아산병원 홈페이지>

3개 이상이라면 갱년기 의심이라는데, 7개 질문이 내게 해당된다.




내게도 자연의 시간은 예외 없이 흐르는구나 싶다. 

영화에서 보았던 벤자민 버튼이 살짝 부러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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