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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an 09. 2022

[단편] 어머니의 빨간 내복

다양한 글쓰기 경험을 위해 습작으로 써본 글입니다. 부족한 글을 올려 송구한 마음입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때가 있다. 


김 부장은 정신이 몽롱하다. 그럴 때가 있다. 

'꿈인 것 같은데....'

꿈인지 현실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이 그랬다. 현실은 아닌 것 같은데 주변 사물들이 유독 또렷하게 느껴진다. 손을 뻗으면 현실에서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질 것만 같다. 꿈인지 아닌지 혼란스럽다.  


'그래 꿈이겠지...'

그래도 이상했다. 김 부장은 주변 환경에 이질감을 느낀다. 익숙한 공간이 아니다. 이질감의 정체를 알아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 부장의 집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살고 있는 용인 집이 아니다. 40여 년 전 살던 서울 이문동 집이다. 서울 변두리에서 수선집을 하시던 어머니 가겟집 안 쪽방이다. 



앉은뱅이 책상 


방 한 칸에 아버지, 어머니, 동생 이렇게 가족 4명이 모여 살았다. 단칸방은 낮에는 TV를 보는 거실이 되었다. 작은 소반을 펴면 밥을 먹는 공간이었다. 방의 양쪽 구석 자리는 우리 형제의 공부방이기도 했다. 밤에 두툼한 솜이불을 펴면 코 끝 시리기는 해도 바닥 온기 훈훈한 침실이었다. 방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어릴 때는 그 방이 제법 크다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휘익하고 둘러보니 아파트 작은 방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즈다. 어떻게 이렇게 코딱지만한 방에 네 식구가 살았나 싶은 생각이 스쳐간다.  


한 쪽 구석에 앉은뱅이 나무책상이 보인다. 국민학교 때까지 썼던 책상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책상 위에서 숙제를 했다. 어머니가 어렵게 사주신 어린이 문학전집을 읽으면서 꿈을 키웠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놀이공간이기도 했다. 일하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배고프면 동생과 라면을 함께 나누어먹기도 하던 책상이었다. 앉은뱅이 책상 위에는 검게 그을린 냄비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무의식 중에 책상 서랍에 손이 긴다. 추억 돋는 물건들이 눈에 띈다. 

팽이와 낡은 줄 두어 개. 
여러 개의 별과 다양한 그림들이 인쇄되어 있는 동그란 모양의 딱지 묶음.
다양한 크기의 유리구슬. 
빨간 화약 캡슐로 장전하는 장난감 권총. 
한쪽 무한궤도가 망가진 탱크 모양의 장난감들이 책상 서랍 안에 어지러이 놓여있다. 


등 뒤가 섬뜩했다. 누가 있었다. 

"하나는 가져갈 수 있네만..."

고개를 휙 하고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형체가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인 것 같은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서있었다.

김 부장은 상황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꿈이 아닌가...?'

마음이 찝찝하다.



김 부장의 마지막 기억


김 부장의 마지막 기억은 통화 중이었다. 회사 전화였다. 여권번호를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주재원 발령을 위해 비자 발급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자동차 글러브 박스에 여권을 넣어둔 것이 생각났다. 살짝 여권을 꺼내고자 했다. 여권번호만 불러주자 생각했다. 간단한 일이었다.


곁눈질로 글러브 박스를 슬쩍 쳐다보았다. 왼손으로는 운전을 잡았다. 오른손을 글러브 박스 쪽으로 내밀었다.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글러브 박스가 열렸다. 


오른손을 쭉 뻗어 손끝 감각만으로 여권을 찾기 시작했다. 자동차 등록증, 보험 증권, 회사 수첩이 어지러이 엉켜있었다. 수첩 크기만한 여권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권을 다른 곳에 두었나?"


자동차 윈도우에 펼쳐진 도로 앞 상황을 보니 차가 별로 없었다. 계속 여권을 찾아도 될 것 같았다. 몸을 약간 조수석으로 기울였다. 고개를 살짝 돌려 글러브 박스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글러브 박스 안을 다시 뒤적거렸다. 

"쿵"

갑자기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군시절 사격 훈련 중에 들리던 총성만큼이나 커다란 소리였다. 

그것이 김 부장의 마지막 기억이다.  



카시오 시계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미 마음에서는 조금씩 인정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되었구나.'

김 부장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물끄러미 책상 서랍 속 물건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나는... 추억삼아 가져갈 수 있네"

김 부장은 누구의 말인지, 무슨 의미의 말인지 몰라 멍하니 서있었다.


형체가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내가 인식하고 있는 '그것'은 김 부장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하나를 가져갈 수 있으니 골라보라는 것이구나.'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 정보를 한꺼번에 이식해준 기분이었다. '추억의 물건 하나를 고르고 나는 사후세계로 떠난다.'라는 의미가 이해가 되었다.


서랍 속 물건을 뒤적거렸다. 이상하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을 블랙홀 같은 것이 빨아들여 버린 듯했다. 그냥 흥미 잃은 아이처럼 심술궂게 뒤적거렸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지금 상황을 모면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자시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카시오 시계다. 지금이야 스마트 워치나 비싼 시계를 차지만 그때는 전자시계가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친구 녀석이 차고 다니는 전자시계가 부러워서 어머니를 조르고 졸랐다. 내가 시계를 못 차는 것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수선 일로 몇 달을 조금씩 모으시더니, 시계를 하나 사 오셨다. 카시오 전자시계였다. 버튼을 누르면 날짜도 바뀌었다. 알람도 울렸다. 작은 시계 안에서 이루지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매일매일 차고 다녔다. 


무의식 중에 그 시계를 집어 들었다. 사당동에 살고 계신 어머니가 문득 떠올랐다. 

'어머니는 뭐하고 계실까? 올해는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아... 어머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노파가 눈에 들어왔다. 둥그란 작은 어깨가 유독 힘없게 보였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흰머리, 얼굴 가득한 주름...

어머니였다. 

어머니도 같은 공간에 있었다. 어머니의 이문동 집이었다. 어머니는 수선일로 조금씩 모은 돈을 모으셨다. 천원, 이천원 푼돈을 악착같이 모아 서울에서 첫 집을 사셨다. 등기를 마치고 너무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문동 집은 어머니에게는 애증의 집이기도 했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보증으로 집을 날리셨다. 어머니도 모르게 섰던 보증이었다. 어머니는 며칠을 앓아 누으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인생 첫 집을 허공으로 날리셨다. 


어머니가 왜 여기에 계신지... 혼란스러웠다. 어머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는 40대 나이에 과부가 되셨다. 어린 형제를 여자의 몸으로 키워내셨다. 수선일, 세탁일을 하시면서 형제를 악착같이 키워내셨다. 특히 큰 아들인 김 부장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아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한 날에는 손님들에게 수선비를 깍아주면서 자랑하셨다. 김 부장의 대기업 입사는 당신의 기쁨이었다. 아들이 영양제라도 사기지고 오는 날이면 아껴두고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먹곤 하셨다. 아들이 가끔 주는 용돈은 꼬깃꼬깃 모아두었다가 손주들에게 다시 전달해 주시고는 했다. 평생 일하느라고 당신을 위해서는 즐겨보지도 못하신 분이었다.


당신은 목숨같이 키워냈던 큰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절하셨다. 영안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면서 오열하셨다. 장례기간 내내 울다가 혼절하고, 울다가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아들의 발인이 끝난 다음 날 어머니는 깨어나지 않으셨다. 작은 며느리가 어머니를 깨우러 왔을 때 어머니는 세상에 작별을 고하셨다.



어머니의 빨간 내복


어머니 눈에는 내가 안보이는 듯하다. 어머니는 노트 정도 크기의 얇은 상자 하나를 가슴에 꼭 쥐고 있다. 어머니가 고르신 추억의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눈에 익숙하다. 빨간 내복이 곱게 포장된 박스다. 김 부장이 입사 후 첫 월급을 받아 산 내복이었다. 어머니는 내복이 아까워서 입지를 못하셨다. 

"우리 아들이 어떻게 번 돈인데..."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었다.


김 부장은 다시 사드릴 테니 그렇게 입으라고 해도 '알았다.'하시면서도 입지 않으셨다. 김 부장은 빨간 내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머니의 가장 소중한 추억의 물건은 아들이 처음 선물한 '빨간 내복'이었다.



불효자 김 부장은 웁니다.


눈물이 김 부장의 뺨을 타고 흘렀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아들이 죽어서까지 불효하는구나 싶어 고통스러웠다. 김 부장의 곁에 있는 '그것'에게 매달렸다. 

'나는 무엇이 돼도 좋으니 제발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울면서 매달렸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도록 매달렸다. 제발 어머니를 살려달라고...제발...

.

.

.

"여보 왜 이래? 아유 눈물 좀 봐! 당신 왜 울어? 어머니는 왜 불러? 당신 울었어?"

아내가 김 부장을 흔들어 깨웠다.


'꿈이구나!'

작년 말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시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김 부장이다.

추운 겨울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더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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