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단점
하루는 미역국이 너무 먹고 싶었다. 미역국을 파는 식당이 어디 있더라? 떠오르는 곳은 찜질방뿐이었다. 미역국 먹으러 찜질방을 가야 하다니. 그런데 찜질방은 어디 있더라? 결국 다 늦은 저녁에 마트에서 자른 미역을 한 봉지 사 왔다. 4인분인 줄 알았던 미역은 다시 보니 40인분이었다. 이걸 언제 다 먹어?
미역국은 보통 소고기를 넣고 끓이지만 미역을 기름에 볶고 물을 넣어 뭉근하게 오래오래 끓이기만 해도 맛이 퍽 좋다. 문제는 뭉근하게 오래오래 끓일 정신도 시간도 부족하다는 거지만. 미역국을 파는 집을 검색하다가 결국 미역을 사 오고, 미역을 불리고 볶고 끓여 한 대접을 만들기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그럼에도 미역국은 '약한 불에 30분만 더 끓였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맛이었다.
국은 부엌에 가면 늘 있는 음식이었다. 두 세 종류의 국이 있을 때도 흔했는데 아침에 새로 끓인 콩나물국과 어제저녁에 끓인 우거지 된장국이 아직 남아 있는 식이었다. 국 없이 밥 못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국물은 염분이 높아 살을 찌우고, 건강을 해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오히려 잘 안 먹게 된 음식이었다. 밥을 말아먹는 일은 많지 않았고, 기껏해야 건더기나 조금 건져 먹고 말았다. 그냥 국은 늘 있는 냉장고 속 김치 같은 존재였다. 적어도 엄마의 부엌에서는.
독립하고 2년쯤 지나고부터 미역국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던 그 밤 즈음에는 거의 매일 국물을 먹고 있었다. 해장국, 콩나물국밥, 안동 국밥, 육개장, 짬뽕 할 것 없이 식당에서 파는 밥 말아먹는 국물은 죄다 찾아서. 가끔 미역국이나 시금치 된장국같이 너무 흔한데 메인 메뉴로 내놓는 식당이 없는 국이 당겼다. 미역국은 아쉬운 대로 끓여 먹었다. 레트로트로도 시도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입맛보다 좀 짜고 국에 든 미역이 적어 대안이 되지 못했다. (최근 맛본 블록 형태로 건조된 미역국은 대안이 될 거 같다. 유레카!) 된장국은 꾹 참았다가 본가에 가서 먹었다. 한 번은 된장국이 너무 먹고 싶어서 추운 날씨를 뚫고 본가에 갔는데 엄마가 옆집에서 나눠줬다며 사골국을 줘서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집에 왔는데 엄마의 국물이 없다니. 그럼 이 추운데 내가 여기까지 왜 왔는데!
독립의 단점은 내 집에 엄마가 없는 것이다. 독립에는 국물로 대변되는 엄마의 음식, 음식으로 대변되는 엄마의 노동이 없다. 혼자 살면서 국 끓이는 일이 얼마나 성가신지 알았다. 1인분 양 맞추기가 간 맞추기보다 어려웠고 맛 좀 내려면 죄다 육수가 필요했다. 항상 나보다 먼저 출근하던 엄마는 어떻게 아침마다 새로 국을 끓였을까. 얼마나 많이 반복했기에 이 성가신 일을 출근 전에 해냈을까.
엄마가 없어서 나쁜 점은 내가 엄마의 노동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마주하는 데에 있다. 엄마처럼 살기 싫지만 그래서 엄마는 엄마처럼 계속 살게 만드는 나를 보는 데에 있다. 시금치 된장국이 먹고 싶을 때마다 엄마가 될 자신도 엄마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될 자신도 없는 나를 생각한다.
블록 미역국이 있어서 아주 조금 다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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