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질문에 다른 답,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달리 씁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23
1.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글쎄요, 누가 묻느냐에 따라 내가 하는 일을 달리 답하겠습니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대상이 누구냐고 물으면 "내 학습 시간에 맞으면 다!" 가르칩니다. 어린이집 어린아이부터 복지원 70세 할머니(나는 그들은 왕언니라 부릅니다)까지 모두가 나의 학생이고 선생님입니다. 나는 누구든 가르치고 또 가르치면서 그들로부터 배웁니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20년 차 학원 강사입니다. 재미로 책을 출간하고 원고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부수입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직접적인 소득이 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지출 영역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적극적인 취미생활러입니다. 바라건대 누가 나에게 에디톨로지스트라고 불러주면 좋겠습니다.
2.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과 직함을 내밀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오후 시간에 학원에서 초중고 학생을 가르칩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아침 시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과 특별 활동 수업을 합니다. 간간이 학부모나 지인과 독서모임을 통해 책과 함께 학습자 혹은 호스트로서 발제권을 갖고 책이란, 글이란 어줍지 않은 강의를 합니다.
가르치는 과목이나 영역은 매한가지겠지만 대상에 따라 수준과 환경이 다르니 하나의 주제 속에 준비해야 하는 배경과 질문과 교훈의 정도가 다릅니다. 상대에 맞는 적합한 비유와 결론을 잘 이끌고 마무리해 주어야 제대로 된 수업이고 강의입니다.
3.
얼마 전 경험한 재미있는 하루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수업을 하러 갔는데 주제가 <식물 -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였습니다. 나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무릎을 꿇고 아이들 눈을 맞추고 가장 호기심 있는 눈빛과 친절한 말투로 물었습니다.
“
어린이, 예쁜 꽃이 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예쁜 화분에 씨앗을 넣고 흙을 덮어주며 잘 자라, 자장가를 불러줘요.
- 꽃에게 물을 주고 뽀뽀도 하고 사랑해,라고 말해요.
- 꽃한테 해님이랑 많이 놀라고 해요.
”
아이들 눈높이 세상에서 아이들만이 볼 수 있는 예쁘고 귀여운 답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가족에게 사랑받고 자라듯이 꽃이라는 식물도 그렇게 자란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점심을 먹고 학원에 출근해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른 시간에는 초등부 타임입니다. 때마침 수업 주제는 자연 관찰이라서 텍스트를 조금 바꾸어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
얘들아,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것은?
-물, 흙, 햇빛이요.
- 수분, 토양, 태양입니다.
”
같은 답을 말하고, 단어만 바뀌었습니다.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아는 대로 말해요, 하는 식으로 대답하는 학생들의 말투가 재밌습니다.
다음은 중등부 타임입니다. 이 친구들은 어떤 답을 던져줄지, 뻔히 정해진 답을 주겠거니 예상하고 진도와 상관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
얘들아,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게 뭐니?
- 식물 성장의 3대 요소는 이산화탄소, 물, 양분입니다.
- 3대 요소를 묻는 거겠어? 질소, 이산, 칼슘, 마그네슘, 붕소. 뭐 그런 거 아닌가요?
”
질문과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나는 같은 질문을 눈높이에 맞추어 질문했고, 돌아온 답도 표현이 다를 뿐 결국은 같은 답이었습니다. 질문의 대상에 따라 접합한 말로 표현해서 물었고, 각자 수준에 맞는 답을 주었습니다.
4.
현자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할 때, 대상과 처지에 맞게 질문하고, 그 대상이 이해하기 쉽도록 어울리는 적합한 비유를 들어 답을 주었습니다. 제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가르침이라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하고 이해시켜서 깨닫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높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쓰는 사람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의 수준에 따라 어울리게 표현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의 표현을, 청소년에게는 그들이 쓰는 단어와 표현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할머니에게는 할머니가 쓰는 말로 바꾸어 써야 알아듣습니다.
내 말 좀 들어보아라 백날 말해봐야 듣고자 하는 의지나 재미가 없으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듣는 사람 처지에서 그 수준에서 쓰고 말하면 됩니다. 그래야 들으려 하고, 또 알아듣습니다.
시험 서적이나 아카데미 한 것이 아니라면 보통 우리가 관계나 소통에서는 질문 속에 이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한다는 것은 반드시 정답을 얻자는 것도, 답을 확인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공감하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타인을 향한 글을 쓰고 말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적합한 비유와 수준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읽습니다. 듣습니다. 알아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