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회사 근처 카페는 점심시간이면 카페인좀비로 북새통이다.
꼬마김밥 점심에 로스터리 커피,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은 오래전에 버렸다.
북적임이 힘들지만 핫플을 가고 싶어서 모든 곳을 오픈런하는 내가
유일하게 소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다.
점심식사 후 들르는 카페. 특히 이런 계절, 바로 이 시간.
지금 내게 카페인이 필요하다고는 못하겠다.
이미 아침에 473ml를 들이켰으므로. 커피 때문도, 친절한 사장님 때문도 아니다.
그곳에 모여든 우리들의 바이브 때문이다. 대체로 다 낯설고 다른 회사를 다니지만,
약간은 지치고, 조금은 힘들고, 그래서 자유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결심할 거라는
이심전심일 것만 같은 마음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어제 내린 비로 공기가 맑고 투명한 촉촉 피부를 자랑하고,
하늘이 진파랑을 뽐내며, 연노랑 햇살이 체리핑크 철쭉을 쓰다듬고,
이팝나무 꽃들이 폭신폭신 눈송이를 펼치며 봄의 설경을 만들기 시작할 때,
줄지어선 키다리 메타세콰이어 꼭대기 연두색 어린 이파리가 손짓을 하며,
지나던 봄바람을 빌어 차르르르 소리로 인사를 할 때,
이 꽃들 사이에서, 나무 그늘 밑에서, 진한 카페인 향이 흐르면,
까짓 몇 분 지각쯤이야.
담대한 호언지기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덕분에 퇴근이 곱절로 늦어지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