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헬스장에 가지 못했다. 구구절절 늘어놓기엔 지나치게 구질구질하고, 침묵하기엔 내 삶을 너무 크게 장악하고 있는 '중대한 개인 사정' 탓이었다. 사실 2주 전 내 왼쪽 발톱에 떨어진 20kg짜리 원판 탓도 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발톱 일부가 불에 탄 듯 검게 변했을 뿐.) 또 무료 OT 날, 거지인 내게 PT 결제를 열성적으로 권하던 트레이너님의 영업을 피하려다 어딘가 꼬였던 탓도 조금은 하겠다.
어쩌다 급하게 시작한 새로운 일은 익숙하지 않은 무게로 내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핑크 덤벨을 들러 가는 대신 방구석에 앉아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라도 쇳덩이를 잡지 않으면 근손실이 오지 않을까, 어깨가 말려 들어가는 건 아닐까, 엉덩이가 꺼져버리는 건 아닐까 하며 '귀여운 근심'으로 하루를 채우던 나였다. 하지만 진짜 삶의 비극이 들이닥치자 그런 고민은 값비싼 사치품처럼 느껴졌다. 근육의 선명도보다 당장 내일의 생존이 더 선명한 위협으로 다가오자, 나는 나의 하찮은 육신이 무너지는 것을 무력하게 방관했다.
이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건 나의 영혼이 아니라 유튜브 알고리즘이었다. 주인도 모르는 내 마음의 허기를 귀신같이 알아챈 알고리즘은 더 이상 운동 후 단백질 섭취법이나 완벽한 사레레 자세를 권하지 않았다. 거실 한가운데 앉아 그저 무심한 밥 친구가 되어주던 <역사를 보다>, <과학을 보다> 시리즈, 그리고 더 이상 뛰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심장을 미세하게 자극한 <흑백요리사 2>의 짜릿한 순간들. 안성재 셰프의 엄격한 눈빛과 귀여운 벨루가 가족, 명예 영국인의 명언집이 내 화면을 도배했다. 내가 이것들을 소비하는 동안 화면 속에서 땀 흘리던 프로 보디빌더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득근의 열망이 떠난 자리를 채울 것은 세상에 너무도 많았다. 내 알고리즘은 이미 나의 운동 인생에 사망 선고를 내린 듯했다.
사실 고개를 들어 밖을 봐도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사 한 번에 체지방을 털어내고 약물로 식욕을 없애는 시대. 근육질보다는 아이돌 같은 '뼈마름'이 다시금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 된 시대. 기어이 헬스장에 가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쇳덩이를 들어 올리는 행위는 얼마나 구시대적인가. 고통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취감 따위는 '딸깍' 한 번으로 해결되는 효율성 앞에 무력해졌다.
골목마다 자리 잡았던 동네 헬스장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춘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번쩍이는 조명과 외산 기구, 저렴한 구독료를 앞세운 거대 체인점들뿐이다. 그곳엔 관장님의 훈수 대신 키오스크의 무기질적인 안내음과 인포 알바의 기계적인 동작만이 있다. 헬스장은 이제 몸을 만드는 수행의 공간이라기보다, 저렴한 가격에 기분만 내는 거대한 구독 서비스 센터가 되어버린 것 같다.
다들 그러더라, 이제 헬스가 망했다고. 효율을 따지는 세상은 더 이상 땀 흘리는 정직함을 믿지 않는다. 나 역시 일주일의 공백 사이에서 깨달았다. 망한 것은 내 운동 기록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검게 죽은 발톱과 굽어버린 어깨를 가진 채 나는 이 유행이 지난 운동의 끝자락에 서 있다.
내일 아침, 오늘 밤의 다짐처럼 다시 헬스장 문을 등으로 당겨 들어갈 수 있을까? 세상이 망했다고 말하는 그 비효율적인 짓을 굳이 사서 하기 위해서. 고작 2kg짜리 핑크 덤벨이, 헬스판처럼 망해가는 내 삶을 지탱할 유일한 지지대일지도 모른다는 미련한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