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오래 있었을 뿐인데
나는 자주 나가지 않는다.
집이 더 좋다.
창문을 따라 들어오는 바람이 천천히 커튼을 흔들고,
조용한 빛이 방 안 벽을 기어오를 때면,
그게 하루의 전부처럼 느껴진다.
이런 날엔 무엇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채워진다.
내가 사는 곳은 분주한 거리의 중심에 있다.
차들은 쉬지 않고 지나가고,
가게 간판은 밤새 불을 밝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 되면
도시는 숨을 고르는 것처럼 느려진다.
햇살이 천천히 깔리는 시간,
나는 집을 나선다.
운동화 끈을 묶고,
발을 땅에 붙인 채로 조용히 뛰기 시작한다.
발밑에서 바삭거리는 낙엽 소리,
서늘한 공기가 뺨을 스치는 감촉,
가끔 들리는 새소리,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그 모든 소리는 작지만 선명하다.
나는 빠르게 달리기보다,
그 조용한 소리들과 함께 움직이는 쪽을 택한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알지만 타지 않는다.
두 발로 땅을 밀며 달리는 것이
훨씬 더 내 삶의 리듬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땀이 흐르고, 숨이 차고,
천천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할 때면
나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운동은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반복되고, 반복되며,
익숙해진 루틴 속에서
나는 나만의 평화를 찾는다.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는 헬스장에서도
사람들의 숨소리와 기계음이 뒤섞인 공간에서도
나는 내 호흡만을 따라간다.
그 안에서 나는 내 고요를 지킨다.
나는 slow life를 좋아한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느낄 수 있는 삶.
결정이 급하지 않고,
생각이 천천히 말이 되기까지의 여백,
정답이 아니라 감정으로 사는 일.
하루가 분 단위로 잘려 나가지 않고,
하루 전체가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질 때,
나는 비로소 숨을 쉬게 된다.
나는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사람들 틈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혼자 있는 방,
그곳의 적막한 공기 속에서
문장을 곱씹는 시간이 더 잘 맞는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머그잔을 감싸는 손끝의 따뜻함,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결.
그런 작은 소리들이 내 하루를 완성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작고 조용한 장소들.
햇살이 정면으로 쏟아지는 벽 옆 벤치,
사람이 드문 골목의 이끼 낀 담벼락,
돌계단 위에 오래 놓여 있던 나뭇잎 하나.
그런 장소를 기억해 두고,
언제든 다시 찾아가는 것.
그게 내 나름의 여행이다.
이 도시는 빠르다.
사람도 많고, 할 일도 많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빠르지 않다.
내가 선택한 속도는 조금 느리다.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멈춰 서서,
그 거리의 공기를 입안에 잠시 머무르게 한다.
누군가는 그걸 비효율이라 말하겠지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균형이다.
혼자 걷는 길은 가끔 외롭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나는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며,
더 깊게 생각한다.
그리고 하루의 끝,
도시가 가장 부드럽게 가라앉을 무렵,
나는 내가 가장 아끼는 시간을 맞이한다.
집 앞 작은 레스토랑의 패티오.
아내와 마주 앉아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맥주잔을 천천히 기울인다.
잔 안에서 거품이 천천히 사라지고,
아무 말 없이 웃는 순간이 흐른다.
그 시간이, 그 순간이
내 삶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은 맞은편 카페에 앉는다.
아내와 강아지,
햇살 좋은 날,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우리는 조용히 앉아 해를 마신다.
강아지는 무릎 위에 기대어 졸고,
햇빛은 천천히 우리의 어깨를 감싼다.
그런 날엔
시간조차 우리를 방해하지 않는다.
느리게 흘러가는 도시.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속도로 살아간다.
빠르게 지나가도 놓치지 않도록,
느리게 살아도 잊히지 않도록.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아주 충분히,
좋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