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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퀼티 Mar 29. 2017

시인의 가장 무서운 원수


친애하는 여러분. A의 서신을 잘 보시오. A는 그녀가 영원한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적고 있으며, 이를테면 기꺼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손짓과 위대한 운명을 직감케하는 강인한 목소리 그리고 지지 않는 황혼이 깃든 향기까지, 그러므로 그녀를 집어던졌다고 고백하고 있소. A는 그녀의 미소에 섬찟한 고통을 느꼈다고도 하였소. 우리가 알며 짐작하던 모든 진실들은, A에 의하면 그 무엇도 그녀의 올곧고 불멸하는 영혼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가 그녀의 원죄를 뒤집어쓸 수 밖에 없음이 자명하다고 밝히고 있소.


단 하나의 결정만이 남았소. A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하겠소? 자비로운 우리의 존재가 이끄는 바에 따르면 A를 쇠못으로 찍어 매달아야 한다고 전해져오고 있소. 나는 그것이 참 도리에 맞는 일이며, 우리의 신탁이 이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소만, 진실된 자라면 그렇게 답하지는 않을 것임을 고백하는 바이오. 우리는 타락이 우리에게 주는 해방감에 취해 생을 분별없이 지나쳐왔고, 그로인해 승냥이같은 C의 습격들에 맞설 수 있었소. 그런데 A의 사형은 우리의 덧되지 않은 웃음들을 떠도는 돌림노래의 가삿말로 박제시킬 것이며, 죽창 위로 나와 당신을 꽂아 도처에서 쥐불놀이를 펼치게 만들 것이오.


나의 몸, 나의 목소리들이여. 그녀를 죽입시다. 저기 총천연색 얼룩들로 뒤덮인 저승의 기슭에서 기어오르는 그녀에게 침을 뱉읍시다. 창을 날립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뒤에서 A가 우리를 묘지의 늪으로 밀어버릴 것이오. 환상과도 같은 고통들에 취해 허벅지가 이미 빠져든 것도 모른채 꿈속으로 잠겨들 것이오.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게 될 것이오. C가 다가와 우리의 목을 수확해 갈 것이오. 우리를 심을 것이오. 다음해에 열릴 우리의 목들도 또다시 베일 것이오. 심어질 것이오. 메뚜기떼가 갉아먹을 것이오. 그렇소. 묘지의 팻말은 여즉 주인을 기다리고 있소.


여러분. 시간이 없소. 아아. 이미 몰려온 A들이 건물 밖에서 웃음 짓는 소리가 들리오. C는 어디있소? 저기 보이는군. 낫을 들고, 곡괭이를 들쳐메고. 여러분. 시간이 없소. 우물쭈물하지 마십시다. 해가 지기전에 결정을 내립시다. 그녀를 사랑하거나, A를 죽이거나, 우리의 목을 벱시다. 우리의, 그녀의, A의 원죄는....


쿵.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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