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햇살 좋은 봄날의 오후이다. 재필은 일어서서 창가의 블라인드를 내린다. 여유로운 동작으로 블라인드에 달린 끈을 조금씩 당긴다. 재필은 일어난 김에 허리를 쭉 펴는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곤 다시 책상에 앉아 하던 집필의 마무리 작업을 마저 한다. 얼마 안 있어서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였다.
"네 김재필입니다"
재필은 어떤 남자에게 무슨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재필은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전화기 건너편에 있는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건너편의 남자는 어떠한 소식을 전하고, 재필에게 협조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설명한다. 남자 본인도 이 상황이 급작스러워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하다고 말한다.
"실례지만, 그 쪽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남자는 자신이 모 기업의 정혁준 대표이사라고 말한다. 명석에게 의뢰받은 자서전을 쓰면서 서면 혹은 구두로 명석에게 전해들은 바로 그 남자였던 것이다. 재필은 상당히 놀랐고 남자의 말을 완전히는 믿을 수 없었다. 혁준이라고 소개한 남자의 목소리는 얇고 박한 느낌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의심이 잡음처럼 낀 채로 재필은 대화를 이어나간다.
"제가 집필하는 그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면 아직 진행 중이라 따로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정혁준이라고 소개한 그 남자는 알았다고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재필은 급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에 일어나서 방 안을 배회한다.
"갑자기 회장직을 그만두셨다고?"
재필은 의아했다. 진명석 회장은 세계에서 중심적인 발명 관련 기구로 발돋움한 한국발명학회에서 회장직을 역임한지 고작 5년이 되었다. 재필은 명석이 갑자기 회장직을 사퇴한 이유에 대한 건 그렇다 치고, 명석의 나이는 50대로 그의 커리어는 아직 한창 때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재필은 최근 자신이 하고 있는 자서전 대필 작업에 대해 꽤나 몰두하고 있는 중이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이자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으며, 한국인 중에 세계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진명석 회장은 다섯 손가락에는 항상 들어가지 않는가. 재필은 자신이 대필작가로써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한듯 싶은데도 자신에게 일을 맡긴 명석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내가 대단한 건 아니고, 대단한 건 나를 키운 부모님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일세. 그들에게 감사하게"
재필은 카페에서 명석에게 그 말을 듣고 또 다시 재차 감사하다고 말했다. 재필이 생각하기에, 명석의 지인에게도 충분히 감사하고 명석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유는 명석이 있기 때문이다. 재필은 그 말을 조심스레 전하고 정말 감사하다고 또다시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하하. 고집이 의외로 있구만. 나는 그 모습이 더 보기 좋네"
명석은 재필이 다시 감사하다고 전하며 고개를 숙이려는 걸 막으려는듯이 재필의 등을 툭 친다. 그리고 재필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한 명의 사람으로써 기억되고 싶기 보다는, 나는 내가 사랑한 나의 발명품과 발명 그 자체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어. 그 말을 꼭 잊지 말게"
재필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재필은 마음속으로 경례를 한다. 그는 명석에게 깊이 충성하며 자서전 집필의 작업에 당분간 몰입하며 지낼 것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