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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01. 2024

청춘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암흑기

 "내가 지금은 이래도, 20살때는 내 인생의 황금기였는데 말이야"


점심시간이라 여유로워진 사무실 안에서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키가 웬만한 남자만큼 크고, 안경을 쓰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자 팀장님께서는 고등학생인 딸을 두고 있다고 했다. 딸 얘기를 신나게 늘어놓으시다가 자신의 과거가 문득 생각나셨는지, 한마디 하신 것이다. 그녀가 어떤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 말을 했는지 잘은 모르겠다. 다만, 지금보다 더 여성스러운 옷차림에, 도도하고 기가 세서 뾰족한 말투에, 민첩하고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는 것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다가 사라진다. 그녀의 20살은 지금의 모습에서 흐릿하게조차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아있지 않다. 그녀는 그것을 청춘이라 부를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청춘에 해당하는 때는 언제일까. 아직 어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린 나이니까 청춘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20살 무렵에는?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것은 청춘이라기보다는 앞을 볼 수 없는 시커먼 암흑과도 같은 것이였기 때문이다. 어떠한 정도냐면, 내가 그 시기에서 빠져나와 지금 이렇게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정도이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들과 사유들은 대부분 우울한 종류의 어떤 것이었을 뿐 아니라, 미성숙하고 아직 여물지 않은 것들이기도 했다. 인생을 사는 게 세상이라는 지도를 그려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본다면, 현실 세계와는 맞지 않는 어그러진 지도를 그리고, 그 지도에 맞춰 살아가느라, 발을 잘못 디디며 험한 곳에 도달하기 일쑤였던 시절이다. 또한 그때 그렸던 '지도'를 아직은 전부 수정하지 않은 채로 남겨진 것들도 많이 있다. 당시로부터 10년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가 가는 장소라고는 대학교, 집, 그리고 가끔씩 약속을 잡고 가는 한 친구네 집 정도가 전부였다. 그것도 대학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방학이 되면, 집에서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고, 잠이나 자고,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기 일쑤였다. 화면속 누군가는 청춘을 즐기고, 젊은 시절을 구가하며 여러 희노애락들을 경험하는 모습들인데, 나는 그러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나만의 편견과 오해들을 만들고, 여러 가능성들을 재단하고, 그것이 착오로써 비롯된 것임을 깨닫기 어려워하며 머리만 골똘히 굴리는 생활을 유지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장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것들은 가끔씩이나 내가 기지를 발휘해서 할 수 있는 것임을 현실로 인정했다. 미용실을 가는 것도 어려우며, 편의점에 야식을 사러가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집이 오직 유일한 안식처이며, 집에 있는 것만큼 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친구의 집에서는 어땠을까.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할일 없이 시간을 낭비하며 지내는것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세월을 축내며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록 추억이 쌓여가며, 돈독해진 관계로 무엇인가를 꿈꾸고,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은 혼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값어치있게 느껴졌다. 당시 그 친구와의 시간은 아마도 나를 우울증의 벼랑으로 빠지지 않게 잡아줬던 은인이 아니었을까. 친구와 등산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여행을 자주 갔다. 박물관, 수족관, 게임장, 영화관, 도서관, 탁구장, 당구장, 볼링장, 배드민턴장을 갔다. 한 주가 멀다 하고 다른 곳을 가보기도 했다. 놀 친구가 한 명밖에 없으니, 여러 가지를 기왕 만나는 거 많은 것을 시도해보려고 했다. 지루해지고, 늘어지고, 대화 주제가 한 곳에서 멤돌아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 그래서 자주 만났다.


  그러나 친구와의 노는 시간이 나를 붙잡아주기는 해도, 추락하는 것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한 것 같다. 결국에는 무의미함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또한 목적도 목표도 없이 살아가며 삶의 무게에 짓눌린 나는 결국에는 추락했다. 여기에서는 서술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어려움과 병원 신세를 지며, 나는 20살 청춘의 시절과 그 이후의 몇 년을 어둡고 삭막한 암흑 가운데서 나만의 십자가를 홀로 외롭게 끌어가며 살아갔다. 할 수 있는 건 신세 한탄이었다.


  "저는 사실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요"


  어느 교회 모임에서 내가 실제로 했던 말이다. 때론 아무것도 없음이, 즉 공허함이 그 모든 고통보다도 가장 크게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실제로 그 고통의 크기는 아마 예상보다는 작을 것이다. 그러나, 공허함이 주는 괴로움은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다. 마이너스도 플러스도 없는 세상에서 텅 비어있는 시간이 무한히 주어진 지옥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슬픈 일이 다른 하나의 기쁜 일로 충족받는다는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다. 다만 살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잔다. 살아가는 이유를 누가 알려줬으면 하는 강렬한 욕구를 가진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가 살면서 가져야 할 이유 비슷한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어느 누군가의 식사는 잘 하세요? 잠은 잘 주무세요? 라는 사려깊은 질문이, 단지 살아가야할 의미도 없는데 잘 살고는 있냐고 묻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울감이 극에 달했다. 내가 살아가야할 이유는 이것보다 더 확실하고, 더 있어보이고, 가치있는 것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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