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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Nov 24. 2023

설래(雪來)

새벽엔 눈이 온다던데

설래(雪來) 

                        인용구

희망은 별을 닮았지 응응

작고 하얗고 아름답고

아득히 멀어 닿을 수 없고


새벽엔 눈 예보가 있던데

별들이 하나둘씩 내려앉겠지

작고 하얗고 아름다운 것들이

내 손바닥 위에도 떨어지겠지


그럼 알게 되겠지 응응

손 닿자마자 사라져 버리는

그 희망이란 착각의 차가움을

한 방울 물기에 우리는 얼마큼 젖는지를


새벽엔 눈이 온다던데

설레지 말자 

또 실망하긴 싫으니

응응



    오늘은 별이 밝아서 땅을 보고 걸었다. 어차피 별은 내 것이 아니라서. 괜히 아름다워서. 역사에 걸쳐 무수한 사람들이 저 별들을 보며 사랑을, 미래를, 꿈을 노래하고는 했다. 그렇다면 별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둠 속에서 빛난다는 것에서. 그 빛이 고작 아주 작고 가냘프게 깜빡임이라는 것에서. 한없이 마음에 가까이 다가오지만, 동시에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그 아득함에서. 이러한 아름다움의 성질이 희망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미 전에도 비슷한 표현을 썼었다. "생은 짧은데 밤은 길더라 / 별 만한 희망에 잠 못 이루다 / 푸르게 몰려오던 새벽 / 해로 운 날들, 우르르" (겨울 중에서)


    그런데 오늘은 마침 눈이 온다는 소식도 있었기에, 머릿속으로 눈이 떨어지는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물론 올해의 첫눈은 이미 지나갔지만, 왠지 밤에 눈을 보는 것은 여전히 설레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치 별이 우리 위로 천천히 쏟아지는 느낌일 것이다. 별빛이 내린다, 샤라랄라 랄랄라. 별을 희망에 빗대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 벅찬 풍경이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니 눈은 내 손과 닿으면 곧바로 녹아버린다. 별을 닮은 육각 결정들은 우리의 체온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을 택한다. 내 손길이 닿는 여러 것들이 그러하듯이, 희망은 파괴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많이 슬퍼지는 것이었다. 그래, 어떤 희망은 그냥 멀리 두는 것이 낫다. 꿈은 꿈으로 남을 때 가장 아름답다. 그런 진실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서. 


    차라리 눈은 오지 않는 게 좋겠다. 설래(雪來)지 않는 것이 좋겠다. 섣부르게 희망을 품었다간 실망만 있을 뿐이니. - 이런 생각을 한 번 시로 써보았다. 정말 금방, 자전거 타고 퇴근하는 그 5분 사이에 써낸 시인데 나름 괜찮은 주제 의식과 말재간이 들어가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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