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꽃, 안녕. 제발 안녕.
인용구
꽃, 안녕.
결국 떨어진다. 보름치가 부슬부슬 내리는 동안 나무는 신음도 없이 흰 꽃을 뚝뚝 뜯어낸다. 온 나무의, 모든 가지에 단 하나의 꽃도 남지 않을 때 비로소 끝나는 계절이 있어서 나무는 예년처럼 처단의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매 해 반복되는 종말. 한철의 최후. 나아가는 세상은 어떤 생존자도 허락하지 않아서. 오직 만장일치로, 홀로 영원한 시간 앞에선 삶을 누린 누구도 예외 없어야 하므로.
그러니까 꽃, 안녕. 제발 안녕.
꽃이 떨어진다. 나무를 떠난다. 어떤 비명도, 유언도 없이. 다만 네가 비틀거리며 추락하는 모습을 기억하기. 그 궤적의 유일함은 삶의 증거가 된다. 나의 역할은 화사한 현장을 목도하고 애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너의 회상. 너의 후손을 위한 너의 희생.
너의 한숨. 너의 함성. 너의 호소.
너의
주말 예고된 비소식에 올해 벚꽃구경도 오늘까진가 해서 길을 나섰다. 날씨가 칙칙하고 내 모습도 추레하여 사진을 남기진 않았으나, 글 하나를 또 남김으로 봄을 잘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몇 해 전부터 매년 봄마다 떨어지는 꽃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종일 비가 내렸다.
우산에 내려앉은 젖은 꽃잎이 너무 무거워 눈물이 나올 뻔했다.
- 봄비 (2021.03.27)
찰나동안 공중에 머무는 벚꽃을 보며, 죽음의 순간을 가늠한다. 꽃이 死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나무에서 스스로를 분절하는 순간인가, 영원 같은 체공 끝에 지면에 닿는 순간인가. 아니면 썩어 바스러져 花葉이라 부를 수 없게 되는 시점일 수도 있다.
- 낙화 I (2022.04.11)
"꽃이 비처럼 내렸다," 라는 말을 생각한다.
낙화 II (2023.04.13)
바쿠로초 역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스미다 강으로 연결되는 작은 하천 위로 짧은 다리를 지나는데, 고개를 살짝 돌리니 벚나무가 선선한 바람에 꽃잎을 컨페티처럼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 화락 (2024.04.18)
이렇게 모아보니 매년 이맘때쯤, 꽃과 작별하는 글을 남기는 일이 퍽 괜찮은 의례처럼 느껴져서 올해도 바쁜 와중에 한 편을 써보았다. 사실 쓰겠다고 마음먹자 여러 발상들이 떠올랐는데, 아직은 이른 주제처럼 느껴지는 것들은 미래를 위해 남겨두었다. 그래서 오늘 쓴 이 글이 이전의 글보다 마음에 들게 잘 썼냐 하면 그것은 아니지만, 내년에 더 잘 쓰면 되고. 급조한 이 글도 내년 이맘때쯤 보면 또 애틋하니 하나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씩 주제나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결국은 한 사람에 의한, 한 존재에 대한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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