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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May 31. 2021

일본어 수업

봄은 하루, 꽃은 하나

일본어 수업

                               인용구

봄은 ‘하루(はる)

꽃은 ‘하나(はな)’

봄 하루, 꽃 하나

소중함에 대하여




2021년, 또 하나의 봄이 지난다. 흐르듯 유월이 찾아온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한국인으로서 역사적인 이유로, 또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마냥 좋아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일본의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는 매료되어 있었다. 예컨대 나는 초밥이라는 음식을 좋아한다. 정갈한 일식 상차림을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오타쿠 수준은 아니지만 호평받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기도 하고,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일본 가수의 노래를 담아 다녔을 만큼 나는 일본의 문화 컨텐츠를 즐겨 소비한다.


    일본어를 배우면 더 윤택한 문화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자막 없이 애니메이션 보기, 가사를 이해하며 노래 듣기, 일본 여행 가서 메뉴판만 보고 음식 주문하기... 무엇보다 일본의 소설책을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 문학 서가에서 느꼈던 소박하고 담백한 문체를 번역 없이 접해보고 싶었다. 언어를 배운다면 단순히 그들의 문화를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문화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밥 먹었니?"가 안부 인사인 대한민국. 아무리 미운 놈이라도 "빌어먹을 놈"이라 부르며 밥은 굶기지 않는 나라. family, 가족을 "식구"라고 부르는 나라. 한국인에게 밥이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우리가 쓰는 말만 보아도 금세 알 수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예로, 서양권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댓말'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의 유교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물론 영어 등에서도 높임말/형식적인 말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언어를 다양하게 익히다 보면 유기적인 이해도 가능하다. 예컨대 나는 유럽 여행 중 파리에서 프랑스어를 전혀 배우지 않았음에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많은 단어들이 같은 라틴어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어를 조금 배울 때에도 한자를 보며 그 음과 뜻을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작지 않은 쾌감을 느꼈다. 문장을 구성하는 어순도 중국어와 영어가 유사하다는 이해를 갖고 출발하니 더 금방 배울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언어는 배울수록 요령이 생기고 이해가 배로 깊어지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아직 일본어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말하면 게으름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독학을 해보겠다고 히라가나를 외우다가 포기한 적이 있는데, 다가오는 여름에는 틈틈이 다시 일본어를 공부해볼까 싶다.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드문드문 일본 단어를 몇 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꽃 = 하나(花, はな)'이다. 박효신이 불렀던 "눈의 꽃 (일본어 버전: 雪の華, 유키노 하나)"을 통해 배운 단어인데, 음이 너무 예뻐서 금세 외웠다. 우리말로 좋은 단어들은 일본어로도 소리가 예쁜 경우가 많았다. 위의 시는 '봄 = 하루(春, はる)'라는 것도 배우고 난 다음에 뭐랄까, 고개를 끄덕이며 쓴 시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귀하다. 귀한 것들은 희소하다. 어쩌면 그 희소성에 아름다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봄은 하루, 꽃은 하나. 봄 하루하루, 꽃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해야지. 오월의 마지막 날마저 흘려보내고, 다소 때늦은 반성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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