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답잖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떠난 겁니다 당신은 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저는 별 같잖은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이 미울 수 없는 까닭에 당신을 지울 수 없는 까닭에 저는 우는 법을 잊었습니다 그저 가끔 우스울 뿐입니다
외로울 때는 외려 울지 못하고 그리울 때도 그리 울지 못해서 이따금 진실에, 상실에 괴로워서 실없는 말장난이나 했나 봅니다
더는 애쓰지 않겠습니다 愛 쓰지 않겠습니다 사랑을 사람이라 쓰겠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내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은 쓸데없는 게 아니겠지만 사랑을 쓸 데 없음에 가슴 한 켠이 저리고, 시리는 것을 보니 저는 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나는 시였다" 글은 카이스트 대신 전해드립니다(카대전) 페이지에서 좋아요 2000개, 댓글이 500개 이상 달리며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 첫 화면에 소개되기도 했으니 나름 당당한 업적으로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의 인기에 편승하여 인용구 페이지를 홍보했다면 구독자 수가 더 많아졌을까, 그런 유치한 생각도 하면서 이따금 그 글에 대한 반응을 찾아보기도 했다. 사실 브런치에서도 가장 많은 검색 유입과 조회수를 보유한 글이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는 시였다"가 대학교 신입생, 2016년 가을에 썼던 글이었으니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느덧 사망년이라 불리는 3학년에 입성한 나는 저학년 때 인문학 과목을 너무 많이 당겨 들었던 업보를 치우고 있었다. 졸업요건을 채우기 위해서는 앞으로 전공과목들만 열심히 들어도 4년 졸업이 간당간당했다. 2018년 봄학기는 무려 6개의 전공과목을 들었는데, 그중 대학원생도 수강신청이 가능한 400번대 과목이 3개였다. 전기및전자공학부, 그리고 전산학부. KAIST 내에서도 가장 인기 많은 두 학과를 복수전공한 나는 우습게도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 하나가 없었다. 학부 4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학기가 아니었을까. 사흘에 하루꼴로 밤을 새우면서, 정말 사람답지 못한 생활을 했다. 죽여줘... 살려줘... 를 번갈아 외치며 좀비처럼 비틀대던 와중에, 해동검도회의 회장으로서 축제 준비며 운동 참여까지 해야 했으니 몸이 남아나지를 않았다.
제대로 번아웃을 겪던 와중이었다. KAIST에는 KAMF라는 행사가 있다. 카이스트 어쩌고 뮤직 페스티벌인데, 큰 축제인 태울석림제 이전에 부스도 열고 인디 가수들도 여럿 초청해서 공연도 하는 봄 행사라고 보면 된다. 태울석림제에서 부르는 대형 가수나 아이돌도 좋지만, 나는 KAMF에서 만나는 새로운 음악이 더 좋았다. 돌이켜보니 완전 인디도 아니다. 짙은, 데이브레이크, 체리필터(!!), 폴킴까지 정말 유명한 가수들이 많이 왔었다. 2018년의 KAMF에는 어떤 가수가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해 봄의 KAMF는 힐링이 필요했던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카대전에서 운영한 부스 덕분이었다. 지금은 에타를 더 많이 이용하지만, 당시의 카대전은 카이스트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용하는 공식 비공식 커뮤니티였다. 카대전의 운영자가 아직도 학교를 재학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소규모의 사람들이 카대전 부스를 운영하며 여러 굿즈를 나눠주고 있었다. 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앙케이트로 "카대전 올타임 레전드 글 투표"를 진행했다.
좋아요 4천 개 이상을 받은 팬티 도난 사건 글, 카이스트가 좋은 학교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 글처럼 나를 울고(?) 웃게 했던 글들 사이에, "나는 시였다" 글도 있었다. 그리고 나름 그 앙케이트에서도 선전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처럼 좋아요(따봉), 최고예요(하트), 슬퍼요 등의 감정 표현 스티커를 붙일 수 있었는데 내 글 위에 여러 개의 감정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조금... 울컥했달까. 가물었던 마음에 샘물처럼 여러 감정이 솟아났다.
그래서 카대전에 위의 시를 올렸다. "나는 시였다" 글은 친구가 대신 올려준 것이었으니, 카대전에 직접 글을 올린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반나절? 세 시간 만에 뚝딱 써냈다. 원글에서의 언어유희를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으니, 이번에도 모든 표현에 넉넉하게 넣었다. '저는 시답잖은 사람입니다' -> '저는 시가 맞는 것 같습니다'로 끝나는 다시 한번 오만방자를 저지르는 글이지만, 그래도 나의 글을 좋아해 주었던 분들에게 글꾼답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아냐, 좀 더 솔직하자면. 또 한 번 응원과 관심을 받고 싶었다. "나는 시였다"라는 글이 내게 주었던 행복과 위로가 그때의 나에게는 필요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시였다 II"를 올렸을 때의 반응은 원글보다는 시들했다. 그래도 겨우 생존 상태만 이어나가던 나에게는 그 글을 쓰고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큰 탈 없이 학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글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보면 참 글을 쓰고 공유하는 행위가 나에게는 정말 값진 것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쓰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냈고, 좋은 순간을 담아내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지 않았는가. 브런치를 이용하는 여러분이라면 아마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