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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Mar 28. 2023

냉장고

너는 항상 권장량보다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

냉장고

                        인용구


    너는 항상 권장량보다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 누군가 네가 지닌 것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내어주고 싶다고 했다. 문이 열릴 때면 너는 잠시 화색이 돌았으나, 사람들이 너를 들춰보는 데는 종종 이유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머지 모든 시간을 너는 어둠 속에서 기다렸으리라. 영안실 같은 한기를 꼭 품은 채 말이다.  


좋은 것들은 소비기한이 있었다. 시들다가, 결국 썩은 내를 피워내는 것들을 버려야 했던 날 밤이면 너는 웅웅 숨죽여 울고는 했다. 어떤 것들은 까만 봉다리에 담긴 채 조용히 잊어졌다. 그들은 영영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려서, 어느 순간 너의 깊은 속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선물은 저 아래 꽝꽝 박제해 놓고 김 빠진 소주만 들락거리는 동안, 너는 모든 식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다. 왜 따뜻한 것들은 오래갈 수 없는지, 네가 간직한 것들은 왜 결국 맛이 바래는지. 그런 질문을 너는 먹다 남긴 찌개 곁에 두었으리라.



다시 만난 너는 잠잠했다. 조심스럽게 열어본 네 안에는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차 있었다.




    여느 여름날과 같은 어느 더운 날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들어와 냉장고를 열었다가, 마찬가지로 송골송골 땀 맺힌 콜라를 꺼내는 동안 느껴지는 시원함에 아예 얼굴을 냉장고 안으로 들이밀었다. 그 시원한 품에서 한기를 만끽하다가 문득, 하염없이 슬퍼졌던 기억이 있다. 정확히는 부끄러움, 나아가 안쓰러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냉장고의 기능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다가, 처음으로 그것에서 감사함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냉장고를 열어보는 시간은 하루에 5분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외의 모든 시간을 냉장고는 배경에서 동작하며 나의 요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냉장고의 체온은 4도, 냉동실 영하 19도. 새삼 기계가 항상성을 갖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아주 다정하고 충직한, 반려기계.


역설적인 말이지만 냉장고는 얼마나 따뜻한 존재인가. 당장 냉장고를 열어보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김장 김치와 감자채 볶음, 장조림과 칡즙. 손사래 치며 필요 없다고 거절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받아 들었던 그 마음들을 냉장고는 보관, 아니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반면 내가 냉장고를 열고 닫을 때의 모습은 냉랭하기 짝이 없다. 입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냉장고를 열어서 그 황송한 선물들을 시큰둥히 탐색하다가, "먹을 게 없네" 따위의 말이나 하며 콜라나 캔맥주 같은, 몸에 나쁜 음료나 꺼내드니 말이다.


냉장고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정리를 하다가, 하얗게 곰팡이가 슬어버린 식자재들을 보며 인상을 쓰는 것은 오직 그 쓰레기들에 대한 역겨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반성을 하게 된다. 찍기만 하고 다시는 꺼내보지 않는 갤러리 속 사진들처럼, 그렇게 내버려 뒀던 기억들에 대하여. 자신은커녕 냉장고의 안조차 살피지 못한 나에 대하여. 채우는 만큼 비우는 것도 잘해야 하는데, 같은 원론적인 가르침되새기기도 한다.


위의 글은 이런 관점에서 냉장고를 모에화의인화해서 표현해 봤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꼭 혼자 있을 때의 내 모습 같아서 적잖이 슬프기도 했더랬다. 사람들이 마지막 행의 의미를 많이 궁금해하던데, 그 여러분이 생각하는 고전 농담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법"에서 가져온 것이 맞다. 대충 어떤 넌센스(non-sense)가 자리 잡았다는 의도로 쓰기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조금 재미없으니까 해석은 자유롭게 맡긴다. 멀리서 봤을 때 코미디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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