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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Jul 24. 2023

수영

고개 넣고 음 고개 들고 파

수영

                            인용구

몸에 온기가 돌려하니

다시 물로 들어가야 할 시간

몰랐는데 끔찍하게 싫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눈이 매워서 수경을 썼


물은 맑다 너무 맑아서

깊이조차 가늠이 되지 않고

나는 두렵다 죽기야 하겠냐마는

허우적거리다 결국 가라앉을 것이다

콜록거릴 것이다 우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겠지만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설움을 토할 것이다


키가 물보다 높았을 때는 즐거웠다

엉터리 헤엄으로도 나아가지던 날들

해내지 못할 거란 의심을 가져본 적 없다

이제 때가 온 것이다 영법을 익혀야 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는 걸 나도 안다


물이 차다

등허리에 바짝 힘이 들어갈 정도로

예상은 했지만 역시 차다


괜찮아 울지 말고

할 수 있어 처음부터

힘 빼는 연습부터

숨 쉬면서 천천히

고개 넣고 음

고개 들고 파




    작년 연말, 연구실에서 공식적으로 일주일 휴가를 쓸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부터 신정까지, 일 년의 마지막 한 주는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맞다. 만약 대전에서 연구실 출근을 했더라도 마음이 붕 떠서 아무 소득 없이 일주일을 어영부영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처럼 본가에 올라와 일주일을 어영부영 보냈다. 딱히 사람과 약속을 잡지도 않고 집에서 빈둥댔다. 그래, 광화문으로 소풍 한 번 다녀오고 말았다.


힐링이란 뭘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면,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깨끗한 내 방 침대에 누워 잠을 자다가 알람 없이도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할 일 없이 드라마를 보다가 도서관으로, 집 앞 천변으로 산책을 갔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집에 돌아와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 평화로운 하루가 지나갔다. 딱히 이룬 것은 없었지만, 그것은 출근을 해도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으니까. 잘 때운 하루였다. 이렇게 매일을 살면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잘 쉬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야 하는 날이 다음날로 다가온 아침, 갑자기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몸을 뒤척이면서 괜한 신음소리를 냈다. 월요병이 도진 것이다. 다시 내려가면 학회 제출일까지 주말도 없이 피곤함과 좌절감에 묻혀 살 것이었다. 그것이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위의 글을 썼다.


배경을 듣고 다시 위의 글을 읽으면, 제법 노골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1연의 배경을 설명했으니 2연부터 해설을 이어가 보자면... 물은 맑고 투명하다. 요행도 게으름도 허락하지 않는, 실력과 실적이 전부인 학문의 세계.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내가 발 디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조금 뒤처진들 죽기야 하겠냐마는, 잘하고 싶은 나는 몸부림칠 테고, 그중 대부분은 헛발질이어서 나는 결국 지쳐 주저앉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비참한 미래를 확신하는 것은 귀납적 추론의 결과다. 이미 몇 차례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남긴 채 실패한 경험이 나에게는 누적되고 있었다.


옛날을 떠올리면, 그러니까 물을 (학문을) 좋아했던 때는, 사실 공부가 쉬웠다. 머리가 좋았던 건지, 애초에 필수교육은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던 건지 몰라도 적당히 열심히 하면 기댓값만큼의 결과가 나왔다. 벼락치기, 적당한 문맥 파악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제법 있었고 나는 늘 뛰어난 학생에 속했다. 용케 영재학교, 카이스트라는 좋은 학교에도 들어가 콧대를 세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학원에 와서는 그것이 예전 같지 않다. 키가 크다고 믿었지만 이곳 깊은 물에서는 땅에 발이 닿지 않고,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20년 가까이 해왔던, 내가 감히 가장 잘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 '공부'라는 행위에 더 이상 자신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주변 친구들이 돈 벌고 가정을 꾸리려 사회로, 세상으로 나가는 동안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기로 선택한 나는 이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문제는 이제 나에게는 '선생님'이 없다는 것. 지도교수님은 계시지만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고, 선배들은 있지만 그들도 간신히 물 밖으로 고개만 내밀고 있다. 엉터리 인간은 자연스럽게 낙오되는 이 가혹한 세계에서, 나는 어쩌면 엉터리 인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간다. 그렇게 의기소침해지는 스스로를 다잡는 것조차 나의 몫이다...


대충 이런 내용의 글이었다. 그냥 바다에 떨어진 우물 안 개구리가, 힘들다고 징징대는 모습이 일기처럼 쓰기에는 부끄러워서 수영에 빗대서 썼다. 그런 와중에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전달되었으면 하여 노골적으로 썼다. 이제야 그 배경을 설명하는 나는, 사실 여전하다.


여전하다. 며칠 전의 학회 합격의 기쁨도 잠시, 또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했다. 그 원인을 분석하며 제안한 방법을 전면 재검토하다가, 역시 이런 부분 때문에 '애초에 되는 게 무리였겠구나'라는 패인까지 도출해 냈다. 하나의 오답을 지워나가는 것도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만큼 값진 일이겠으나, 결국 상황은 두 달 전 원점으로 돌아가 당시 오답이라 생각했던 곳을 다시 열심히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답답하고 속상하지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실험을 돌린다. 학회는 25일 남짓 남았는데, 과연 두 달 동안 해내지 못했던 것을 그 사이에 해낼 수 있을까 조바심이 든다. 수영은 여전히 힘들다.


그래도 이번 논문 합격으로 인해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었다. 아, 이 정도 왔구나. 오랜만에 맛본 성취감을 양분 삼아 다시 물속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서투르지만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한참 하다 보면, 헤엄질도 조금은 수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도 역시 월요일은 힘들구나. 자야겠죠? 모두 한 주 또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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