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해야 할 것
느닷없이 유서를 미리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안간 찾아온 불길한 예감 때문이라기보다, 언젠가 닥칠 당연한 이별을 조금이라도 덜 황망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도 없이 아옹다옹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떠나는 순간에는 한마디 말도 못 남기고 이별해야 한다면, 그것만큼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만약 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면, 아내는 그 황망한 와중에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아내,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나를 알았던 사람, 내 땀 냄새와 체온을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나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막막할 것이다.
나의 지인들에게 부고장을 보내야 하는데 대체 어떤 지인이 있는지, 은행 계좌와 잔고는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주식 계좌는 어느 증권사에 개설해 두었는지, 회사에서 받을 상조금은 얼마나 되는지, 혹시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대출금이나 신용카드 빚은 없는지... 하긴 금융전산서비스가 똑똑하니 쉽게 알 수 있겠다.
하지만 손수 모든 것들을 미리 찾아두고 정리해두어야 한다. 내가 직접 쓴 유서나 녹음으로 전할 시간적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가능한 아내에게 전부 남기고 싶다.
어차피 아이들은 아직 젊고, 자기 몫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나이니까.
당연스레 증여세와 상속세가 걱정된다.
아내는 평생 나와 함께하며 대부분의 시간 속에서 맘고생, 몸고생이 많았다. 때로는 깔깔거리며 웃음 가득히 행복도 함께 누렸지만, 가슴 속 깊이 대못이 박혀 숨을 쉬지 못할 만큼 슬픔의 고통이 있었으리라.
그래도 내가 떠난 후에는 그저 혼자 남겨질 일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내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기반이라도 남겨주어야 먼저 가는 내 마음이 조금 놓이겠다. 언젠가 아내도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가 오면, 그때 가서 남은 것을 아이들에게 넘겨주면 되겠지.
그러고 보면, 유서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죽음을 대비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나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애틋하게 느끼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 유서를 시간 날 때마다 수시로 고쳐 쓰고, 다듬고 또 다듬어 잘 써 두어야겠다.
올해가 무사히 지나간다면 내년 초에 다시 쓰고, 그다음 해에도 또 새롭게 써야겠다.
그때마다 내 소중한 아내와 딸들에게, 멀리 있는 부모 형제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적어 내려갈 것이다.
나는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조심스레 유서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