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주말에는 시에 대한 평론(감상)보다는 그냥 사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연말마다 저는 굉장히 별거 아닌 고민에 잠기는데요. 그건 바로 내년에 쓸 다이어리 선정과 꾸미기(?)입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을 씁니다. 표지가 괜찮은지는 당연하고, 내부 디자인은 괜찮은가, 만년필을 쓰는 걸 좋아해서 내지도 신경을 많이 쓰고요. 휴일은 표시돼 있는지 하루마다 기록하는 공간이 있는지, 그냥 기록하는 방식인지 아니면 시간대 별로 기록을 하는 방식인지... 하나를 집고 따지다 보면 내려놓고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며 결정합니다. 또 인터넷에서 보는 것은 안 내켜서 직접 발품을 팔아서 구하고 다닙니다. 작년에는 브런치에 글을 써는 피로감 때문인지 일기를 잘 쓰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거의 매일 일기를 써왔던 것 같아요. 내년에는 일기는 별도로 또 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첫 페이지에 무엇을 써 놓는가입니다. 다이어리를 사보면 첫 면에 흰 바탕에 내지가 있는데, 써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자주 보게 되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는 잊어버리는 공식들이나 법조문을 써놓기도 했고. 작년의 경우에는 '읽은 책 VS 읽을 책'의 구도로 북킷리스트를 만들어보기도 했네요. 매일 무의식적으로 보는 공간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한 해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 옛 일기장을 들여다볼 때, 앞면만 봐도 이때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그려집니다. 가장 재밌는 시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썼던 스터디플래너인데요. 대학교 스티커와 함께 ㅇㅇㅇ대학교 경제학과라고 쓰여 있고 밑에는 '데미안'과 '니체'의 말이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십 년 뒤에 이것을 다시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네요.
연말은 '누군가'를 생각나게 합니다. 독자 분들은 누가 떠오르는지요. 조심스레 물어봅니다. 제게 12월 말은 4월 초와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통증이 느껴집니다. 이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듣는 노래 리스트였습니다. 4월과 12월 말에 들은 노래가 비슷하더군요. 요즘은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올해 말에 학교 수업에서 2000년대 시와 2010년대 시를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요. 저는 2000년대를 발표했고 같이 준비하던 분(종종 제 글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분)은 2010년대 발표를 했습니다. 내년에 대한 다짐으로 올해는 그분이 2010년대 발표 중에서 가져온 시를 적었습니다. "그리운 목소리로 예은이가 말하고,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은 시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글을 쓰면서 아직 '눈물이 앞을 가리다'라는 표현을 안 썼는데요. 이럴 때 쓰려고 아꼈나 봅니다. 시는 이렇게 아프고 아파해야 하나 봅니다. 이런 시에는 어떤 수사적 비평이나 의의를 탐색하는 감상이 없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아플 수 있습니다.
-그리운 목소리로 예은이가 말하고,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다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핸드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우리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 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 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 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서 작가와 시민 분들이 함께 304 낭독회를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4시 16분에 진행합니다. 12월에는 쉰두 번째였고 삼백 사회가 될 때까지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달라져야 했고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라지고도 있습니다. 혹자는 '언제까지'라는 단어를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제라도'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보내는 것은 타인에 비롯돼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닌 듯합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럼 그 빈 공간에는 무엇을 기억하려는 것일까. 모두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체워넣을 다른 기억을 찾지 못했습니다. 문학이 무엇일까. 나는 왜 이걸 하려는 것일까 벗어나지 못할까.라는 물음은 제 기억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올해 제게 가장 뜻깊은 대답입니다. '문학을 하는 나는 누군가?'라는 대답에 스물세 살 제가 내린 올해의 답은 '기억을 지키는 사람'(11월 304 낭독회의 표제)이라고 아프게 내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