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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리어카가 그 옆을 스쳤고

그러자 스쿠터가 넘어졌다

by 변민욱

걷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분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고 있었고 파지 줍는 할아버지가 일상처럼 걸어왔다. 무거운지도 잊어버린 리어카를 끌면서. 좁은 길이었다. 행인들을 피하려 할아버지는 길가 쪽으로 다니셨다. 이 사회에선 운도 빈익빈 부익부인 편이다. 길가에 세워져 있던 비싸 보이는 스쿠터와 리어카가 스쳤다. 두 세상이 어긋났다. 아찔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스쿠터가 쓰러졌다. 사람들이 "어떡해"라는 시선을 보냈다. 끝이었다. 그리곤 일상처럼 그들은 지나갔다.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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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도 등굣길에 파지를 줍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우리는 매일 등굣길에서 봤다.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저런 사람을 도와야 해"와 "저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해" 두 문장 사이에 어떤 움직임도 없다면, 두 말은 같은 행동을 가르치는 말이 된다. 위선(僞善)과 위악(僞惡), 두 단어를 바라볼 때 우리는 선과 악에 집중한다. 그러나 위(僞)를 포장지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두 단어를 자세히 보면 선과 악을 위(僞)가 선행한다. 누구도 뜯지 않았고 누구도 듣지 않았지만 누구나 썼고 누구나 말하였다. 그렇게 위(僞)가 말을 하고 글을 썼다.



이건 일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냥 지나갔다. 더웠으니까. 손에 무언가 들고 있었으니까. 놓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 결국 해결될 테니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데도 가로수가 흔들렸다. 도와드렸다. 더웠으니까. 손에 무언가 들고 있었으니까. 놓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까. 결국 해결될 테니까. 스쿠터 주인 분이 달려와서 할아버지께 괜찮으시냐고 물으셨다. 참 착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같이 가던 분이 "참 착하시군요."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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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던 학창 시절 내 독서대에 써놨던 말이 있다. 바로 '나를 죽이지 못할 고통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 당시 풀었던 수학 문제집이다. 대체로 정답이면서 대체로 오답이다. 문제집 바깥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단단해지며 무뎌졌고 무뎌지며 단단해졌다. 무뎌지며 무거워졌고 무거워지면서도 무뎌졌다. 다시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걸어갔다. 우리가 죽여버린 신을 꼭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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