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퇴고가 많이 필요한 시
아이는 잠시 달빛을 꿔 사막을 꿈꿀 생각이었죠.
하지만 가만히 차오르는 달은 아이의 것이 아니었어요. 달은 별이 오고 나서야 빛났고. 아이는 사막으로 꿈자리를 옮깁니다.
낙타의 꿈 사이 아이는 앉습니다. 아이는 꿈 사이에서 배꼽을 파냅니다. 밤이 되면 배꼽이 아이의 잠을 파냈습니다. 혀가 있는 것은 제상처를 핥아 피를 빨아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쇠 맛이 나더라도 배꼽이 녹슬지는 않습니다. 밤하늘이 까만 것이 이름의 변명이 될 순 없었고. 사막과 파란 하늘이 만나는 해질녘에서 새 싹은 돋아나고. “아니요”라 대답하면 목 주위에 자꾸만 털이 자라났습니다.
아이가 사자에게 시간을 묻습니다. 사자는 두 발로 모래성을 쌓고 모래알 하나를 건넵니다. 바다까지의 거리를 묻자, 바람이 일며 모래성이 스러집니다. 바람이 둥글게 불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람이 그린 발자국 위로 사자가 걸었고. 아이는 거꾸로 사자 등 위에 앉았죠. 조금씩 아이가 흘러내리기 시작했어요.
거북이의 성별은 알을 깨고 나왔던 땅의 온도로 결정됩니다. 체온으로 자신이 태어났던 사막을 기억합니다. 바다거북의 알을 보아도 바다까지 옮겨 주어선 안돼요. 아이는 자신이 차오르던 해변을 그려내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바다거북은 바다에 이르기 전에 햇빛에 익사해 버려요.
농담을 뱉더라도 그림자의 길이가 변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다 걷게 됐는지 아이는 묻지 않았고. 사자와 낙타는 웃지 않았죠. 모래로 빚은 시계를 차고 아이는 뒤를 바라봅니다. 시계를 차더라도 손에서는 목이 떨어지지 않고. 태명은 아이를 겨눴던 첫 농담이 됩니다. 사자는 태명이 없어서 아이가 되지 못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뒤로 걷습니다. 아이는 뒤로 걸어야만 건널 수 있는 동굴에서 발자국을 바라봐요. 그림자가 없습니다. 발자국에 비친 물에 얼굴을 비춰도 물은 아이를 바라보지 않고. 무엇도 바랐던 적이 없었던 사람은 어떤 것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람은 스치기만 하고. 바람을 채웠던 꿈에 묻은 모래가 쉽게 흩날려 버리고. 아이는 이제 꿈에 꿈꾸는 법을 배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