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얼마에 사시겠어요
상상 한 번 해볼 것을 제안한다. 영화 <인타임>을 떠올리면 쉽다. 다른 조건이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만약 '내일'이 돈을 주고 사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내일'을 위해 얼마를 지불하겠는가? 10만원을 지불했을 때와 100만원을 지불했을 때, 당신에게 다가올 '내일'의 모습이 달라진다면 당신은 얼마짜리 '내일'을 살고 싶은가?
지하철을 타러 갔다가 우연히 한 광고를 봤다. 그 광고는 유명한 연예인을 내세우지도, 자신들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화려하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저 까만 배경에 직관적인 한 문장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내일은 원래 무료다.' '내일'이라는 상호명을 가진 곳에서 자신들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해볼 수 있다는 뜻이라는 거 안다. 그런데 나는 이 문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일이 무료라고? 정말?'
처음에 당신에게 '내일'을 돈으로 살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아마 '내일'을 돈을 주고 사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돈을 내야 한다면 누구에게 얼마를 낼지부터 모호해진다. 나에게 내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내일의 값은 얼마에 매겨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 중의 그 어느 누구도 '내일'을 공짜로 얻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하루하루 '내일'을 살아갈 값을 지불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바로 나 자신에게.
어제와 어쩌면 더 먼 과거의 어느 날, 그리고 오늘, 이 모든 순간이 촘촘하게 짜여져 있는 그물에 '내일'은 운좋게 걸려 올라온 물고기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루하루 짜내려간 그물 덕분에 배를 채울 물고기를 얻은 것과 다름 없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내일 퇴근 후 기다리고 있는 치맥의 순간은, 몇 년 전의 내가 치열하게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 정장을 빌리러 다녔던 구직의 시간 덕분이다. 또, 내일 마음에 드는 맛의 치약으로 양치할 수 있는 건, 3종류의 치약 세트를 사보고 그중에서 내 취향에 딱 맞는 맛을 고를 수 있었던 그 어느 날 덕분이다.
그러니까 내게 일어나는 어떤 하루, 혹은 어떤 순간 중에 어제의 나에게 빚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바꿔 말하면 내게 주어진 오늘과 주어질 내일 중에 허투루 보내도 되는 순간은 없다는 뜻이다. 기왕 값을 치르고 얻어낸 것이라면,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이다. 바로 그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 대단하지 않아도, 비싸고 좋은 것을 사고 유명한 곳에 가지 않아도, 그저 나에게 충실했으면 그뿐이다. 내가 빚진 건 직장 동료의 고급 아파트, 대학 동기의 높은 연봉, 이름도 모르는 인플루언서의 외제차가 아니라, 오로지 어제의 나이기 때문이다.
[유미의 세포들 OST Part 8] 멜로망스 (MeloMance) - 우리의 이야기 (Our Story) MV (youtube.com)
몇 년 전 노래인데 가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가 있다. 바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주제곡인 '우리의 이야기'이다. 가사 중에 그런 게 있다. '누군가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건 내가 보낸 시간을 사랑하게 만들죠' 드라마 속에서는 사랑을 나누는 연인에게 해주고 싶은 가사였겠지만, 저 가사 속 '소중한 사람'이 꼭 연인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한다면, 내가 보낸 시간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어제의 선택과 오랜 옛날의 습관들에게 빚진 '내일'을 살아갈 당신, '내일'의 순간 속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기를 바란다.